노회한 정치인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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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정치인 홍준표를 처음 본 게 2003년 가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재선 의원이던 홍 전 대구시장은 한나라당 당사 기자실을 찾아 여당 정치인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어요. 내용을 쭉 들어봐도 근거가 약해 보이길래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거로 밝혀지면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마치 잡아먹을 듯한 눈초리로 째려보며 아무런 대답 없이 자리를 뜨던 모습이 생생하네요. 이후 홍 전 시장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야당에서 저격수 역할을 하던 요주의 의원이다 보니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몇 차례 취재차 찾아갔죠. 그때도 홍 전 시장은 제 면전에다 대고 ‘여자가 무슨 기자를 하냐’,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의힘 대선 2차 경선에서 탈락한 홍 전 시장이 “30년 정치 인생 오늘로써 졸업하게 돼 정말 고맙다”며 “이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 이번 대선에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광역단체장 자리까지 던지고 조기 대선에 뛰어든 그에게 이번 출마가 정치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도전이란 의미가 있었나 봅니다.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가진 스타 검사로 정계에 입문해 5선 의원, 당대표와 원내대표, 경남도지사, 대선후보 등을 거치며 보수정당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죠. 거침없는 입담에 젊은층 사이에서 ‘홍카콜라’로 불리며 환영받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특유의 무례하고 꼰대스러운 언행과 포퓰리스트적 행보는 정치혐오를 키우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한 시대를 풍미한 홍 전 시장의 퇴장 한편에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 오랜만에 호명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 이름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외연 확장’, ‘국민 통합’ 행보라는 해석이 따라붙던데요. 공과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한때 각자의 분야에서 맹활약했던 분들이긴 하죠. 다만 이분들이 한창 활동하던 때가 언제 적인데, 십수 년에서 길게는 20년가량의 세월이 지날 동안 이들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인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주 주간경향은 현실정치에서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이 된 종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헌법 제20조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 원칙을 명시하고 있지만, 최근 종교인과 극우 정치인의 결탁에서 보듯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고 이익공동체가 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현상은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일시적인 흐름은 아닌 듯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그 중심에는 누가 있고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 때부터 개신교와 급격히 가까워진 보수정당 내부의 생각과 기독교계에서 나오는 자정의 목소리까지 다각적으로 짚어봅니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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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