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소신 있는 이들이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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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

공석진 지음·수오서재·1만7000원

[신간] 세상은 소신 있는 이들이 지킨다

저자가 운영하는 ‘공씨아저씨네’는 과일을 전문으로 다루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사이트에 접속하니 지금이 딱 제철인 ‘천혜향’ 사진이 나타났다. 껍질 표면에 상처 자국이 있는 ‘못생긴’ 천혜향이다. 사진에는 가격표 대신 이런 문구가 붙었다. ‘이기철 농민 작(作)’

과일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대로 나오는 공산품이 아니다. “땅과 자연환경, 농민의 땀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일정한 크기와 모양의 ‘예쁜’ 과일을 생산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쁜 과일만 찾는다. 울퉁불퉁하거나 흠집 난 과일은 ‘B급’ ‘못난이’ ‘흠과’ 따위로 불리며 싼값에 팔린다.

‘외모 차별주의’가 판치는 과일 시장에서 공씨아저씨네는 과일을 차별 없이 판매한다. 몇 년 전에는 봄철 냉해로 전북 장수의 농부가 키운 사과에 동록(사과 껍질이 누렇게 변하는 현상)이 심했지만 판매를 강행했단다. 결과는 완판. 먹어본 사람은 안다. 동록 낀 사과는 단단하고 맛있다는 걸.

이 과일가게는 한 품목에 한 농민과 거래한다. 최고의 과일을 찾기보다는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는 농민을 찾는다. 예컨대 방울토마토는 충남 홍성 세아유 농장과 복숭아는 경북 청도 양영학 농부와 거래한다.

세아유의 임영택 농부는 2022년 농작업 중 낙상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공씨아저씨네는 다른 농장과 거래를 트지 않았다. 고인의 아내 김은애 농부의 토마토 농사가 본궤도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복숭아 역시 양영학 농부의 건강 악화로 생산량이 크게 줄었지만 다른 농부를 찾지 않는단다.

저자는 “방울토마토 주인은 여전히 세아유 농장”, “나에게 복숭아는 양영학”이라고 말한다. 소비자 회원들도 같은 생각일 터다. ‘농부를 안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과일이 단지 상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더글러스 브런트 지음·이승훈 옮김·세종서적·2만3000원

[신간] 세상은 소신 있는 이들이 지킨다

독일 공학자 루돌프 디젤의 실종 사건을 다룬 논픽션. 디젤은 강력한 내연기관인 디젤엔진을 발명해 백만장자가 됐지만, 1913년 드레스덴호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던 중 실종됐다. 이 책은 천재적 발명가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추적한다.

무대 뒤에 사는 사람

이성모 지음·오르트·1만8000원

[신간] 세상은 소신 있는 이들이 지킨다

19년차 공연기획자인 저자가 무대를 만들며 경험한 일들을 풀어낸 책이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이면 수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대에 공연을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한 편의 공연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야말로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예술임을 전한다.

같은 하늘 아래서

서울대학교 학생사회공헌단 북소리팀 엮음·이매진·1만5000원

[신간] 세상은 소신 있는 이들이 지킨다

지난해 서울대 학생들이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반석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당시 반석학교 학생 7명이 쓴 수필, 시, 소설 등이 책에 담겼다. 엮은이들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청춘들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책을 냈다고 말한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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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