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강원 삼척 산수유 설경-노란 꽃잎 위에 하얀 눈…봄은 그렇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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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82) 강원 삼척 산수유 설경-노란 꽃잎 위에 하얀 눈…봄은 그렇게 온다
[정태겸의 풍경](82) 강원 삼척 산수유 설경-노란 꽃잎 위에 하얀 눈…봄은 그렇게 온다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스라한 노란 꽃 위로 쌓인 하얀 눈덩이. 3월의 시작부터 폭설이 온다기에 강원도 삼척의 깊은 산속을 찾아 내려온 길이었다. 하필 습설이었고 나무 위로, 지붕 위로 두텁게 내려앉았다. 산길을 올라가던 중에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몸통째 쓰러져 자꾸만 앞을 막았다. 그래서 산속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한 뒤였다. 미끄러지는 차를 달래며 산에서 내려오던 중 길가의 한옥 카페 곁에 피어난 산수유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이미 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토록 다소곳하게 피어난 작은 꽃뭉치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마음은 겨울에 머물러 있었을 터였다.

그런 연유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풍광이었다. 봄이구나. 이 네 글자가 감탄으로 터져나왔다. 산수유는 비로소 이 봄을 선언하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피었다 져버렸는지도 몰랐던, 우리 집 뒷산의 노란 안개 같은 그 무엇에 불과했던 꽃이었다. 아니, 이게 꽃이었는지도 몰랐다. 진한 노란빛으로 물든 개나리가 존재감을 뚜렷하게 피력하는 것과 비교하면 연약해 보이기 그지없는 꽃무더기. 그 산수유가 하얀 눈덩이 아래에서 강렬하게 눈길을 잡아끌었다. 나무 아래 서서 눈 덮인 이 봄을 보고 있는 동안 폭설이 멈췄다. 저 멀리 하늘도 어느새 파랗게 개어 있었다. 눈앞에 다가온 봄을 보란 듯이.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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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