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의 변심과 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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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AFP연합뉴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AFP연합뉴스

“저는 페이스북을 기술 기업으로 생각하지만, 단순히 정보가 흐르는 기술을 구축하는 것 그 이상의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016. 12. 15)

“이제 표현의 자유라는 우리의 뿌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팩트체커를 커뮤니티 노트(Community Notes)로 대체하고, 정책을 간소화하며, 실수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장을 기대합니다.”(2025. 1. 7)

마크 저커버그 메타(옛 페이스북) CEO의 변심은 새롭지 않다. 그의 철학과 신념에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된 터다.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둘러싼 페이스북의 극적인 ‘표변’은 상징적이다. 2017년 1월 페이스북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출범시킬 당시, 그가 바라보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관점은 비교적 합리적이었다. 뉴스 리터러시를 지원하고 팩트체커 전문기관과 협업을 선언하며 책임을 다하는 듯했다. 기술이 ‘건강한 정보 유통’의 마지막 보루라고 착각하게끔 하기도 했다. 플랫폼으로서 “더 큰 책임”을 강조하며 ‘윤리적 기술 플랫폼’으로서 위상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것 같기도 했다.

올해 초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발언들은 2016년의 그와 동일 인물인가를 의심케 했다. 그는 수년간 페이스북과 협력해 허위정보를 최전선에서 방어해왔던 팩트체커들을 “너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어 많은 신뢰를 무너뜨려 왔다”고 비난했다. 인종차별, 폭력 선동, 혐오 표현 등과 보상 없이 싸워왔던 독립 저널리스트들을 ‘미국식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검열의 주체로 끌어내렸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선 “그와 협력해 전 세계 정부를 압박할 것”이라며 옹호했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중국을 손꼽으며 “이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 정부의 지원뿐”이라고 거들었다. 변심 아닌 그의 본심이 마침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실리콘밸리와 워싱턴 권력의 동맹은 저커버그의 ‘본심’ 고백과 함께 현실이 됐다. 한때 주짓수 대결도 불사했던 저커버그와 일론 머스크는 새 동맹의 일원으로 손을 맞잡았다. 여기에 제프 베이조스까지 합세했다. 이젠 정치 권력을 방관하고 로비자금을 지원만 하던 과거의 실리콘밸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워싱턴과 결탁한 실리콘밸리는 저커버그의 선언처럼, 빅테크 견제 세력을 강력하게 압박할 것이다. 실리콘밸리식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부르짖으며 EU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압력을 가하기도 할 것이다. 미국식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각종 허위조작정보의 흐름을 노골적으로 방임할 것이다. ‘고삐 풀린’ 실리콘밸리의 무모한 직진을 막아서지 않는다면 모든 불행의 피해는 전 세계로 화마처럼 번질지도 모른다.

저커버그의 ‘본심’과 함께 몰려올 위험천만한 기술권력의 오만을 누가,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허위사실 유포 등의 이유로 엑스(X)의 차단을 명령했던 브라질 대법관 알렉상드르 지 모라이스 같은 지도자 몇 명만 더 있다면 이 추악한 질주를 통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실리콘밸리의 브로맨스에 그처럼 배짱 있게 맞설 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결국 워싱턴에 올라탄 실리콘밸리 권력을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기술 권력의 분산 즉 AT&T식 해체 모델(1984년 미국 정부, 반독점 소송 통해 통신업체 AT&T 해체)일지도 모른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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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