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해도 시간 지나면 다 찍어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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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밤 국회 정문을 통제하는 경찰과 비상계엄 해제 요구 시위를 하는 시민들 / 박채영 기자

지난 12월 3일 밤 국회 정문을 통제하는 경찰과 비상계엄 해제 요구 시위를 하는 시민들 / 박채영 기자

12·3 비상계엄 속보를 봤을 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나에게 비상계엄이란 영화나 책에서나 보던 것이었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안 됐다. 겁도 났다. 밤 11시 이후 통행이 금지될 것이라는 가짜뉴스에 속을 뻔했다. 그래도 국회 앞으로 가는 길에 취객들이 해롱해롱하는 여상한 지하철 풍경을 보면서 조금 안심했던 것 같다. 비상계엄 선포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로 155분 만에 사실상 끝났을 때는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155분에 그쳤지만 난데없는 비상계엄에 주변 사람들 모두 조금씩 영향을 받았다.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비상계엄 바로 다음 날로 예정된 야외 촬영을 과연 할 수 있을지 걱정을 했고, 주식 투자를 하는 동생은 원화를 달러로 미리 바꿔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날 하필 해외에 있던 후배는 만나는 외국인마다 “한국,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받고 진땀을 뺐다고 했다.

뉴스에는 계엄 블랙홀이 연말 분위기를 망쳐서 큰일 났다고 푸념하는 자영업자의 인터뷰가 나왔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 결방되고 영국 가수 두아 리파의 내한 공연이 취소될 뻔했다. SNS는 계엄 관련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도배했다.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더라도 온종일 뉴스만 보게 됐다는 친구도 있다. 실제로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비상계엄과 이상한 대통령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쏟아지는 비상계엄 관련 뉴스 때문에 벼르고 있던 화장품 세일 기간을 놓쳐버렸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정리한 영상을 만들어서 회사 유튜브 계정에 올렸더니 “어리석은 윤통(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의 ‘발작 버튼’을 눌렀네”라는 댓글이 달렸다. 과격하다 싶지만, 이토록 적확하게 상황을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었다. 이 와중에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욕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 찍어주더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봤다. 하지만 국민이 단체로 ‘발작 버튼’을 눌렸던 날이 쉽게 잊힐까?

사람마다 가진 발작 버튼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크든 작든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잘 잊히지 않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벌써 10년이 지났어도 나는 세월호 참사 직후에 열린 학교 행사에 다 같이 검은 옷을 입고 갔던 것을 기억한다. 2년 전 이태원 참사 때 KBO 한국시리즈 경기가 응원단 없이 열렸던 것도 기억한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12·3 비상계엄 사태’도 그렇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한 사람의 만행으로, 누군가에게는 갖고 있던 주식이 폭락한 날로, 또 누군가에게는 밤새 뉴스를 봤던 날이나 외국인에게 ‘너희 나라 왜 그 모양이냐’라는 부끄러운 질문을 받았던 날로 조금씩 다르게 말이다. 그리고 공통으로 군인의 총부리가 시민들에게 겨누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우리의 일상을 지탱시켜주는 믿음이 깨졌던 날로 기억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벌써 7년이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트라우마는 잊지 못하면서, 몇 년 뒤면 국민이 다 잊어줄 것이라는 국회의원의 희망 사항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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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