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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편집장

홍진수 편집장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라는 의미의 사자성어입니다. ‘결국은 정의가 승리한다’라는 뜻으로 자주 쓰입니다.

얼마 전 열흘 사이를 두고 나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판결 두 건을 두고 ‘사필귀정’이란 평가가 따라붙었습니다. 기사를 보면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 민주당의 수석대변인이 모두 사필귀정이란 말을 했는데 때와 상황은 달랐습니다.

먼저 지난 11월 15일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신동욱 국민의힘 원내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 “사필귀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 수석대변인은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 ‘국토부로부터 협박받았다’며 거짓말을 늘어놓았던 이 대표에게 단죄가 내려졌다”면서 “이번 재판은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입각해 내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부를 향한 인신공격과 판결 불복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1월 25일에는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이 대표는 열흘 전과 달리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선고 후 국회 브리핑에서 “사필귀정의 판결이었다.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치검찰의 무도한 야당 탄압, 야당 대표에 대한 사법 살인 시도를 멈춰 세우고, 윤석열 정권이 짓밟고 무너뜨린 사법 정의와 상식을 바로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조 수석대변인은 지난 11월 15일,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는 기자들 앞에서 “검찰이 시작한 윤석열 정권의 대선후보 죽이기, 정적 말살 시도에 판결로 화답한 것”이라며 “검사는 이 대표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고 조작·왜곡해서 기소했는데,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판결했으니 제대로 된 판결일 수가 없다”고 사법부에 날을 세웠습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하나뿐인데 열흘 사이에 위상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여야의 수석대변인이 입을 맞춘 듯이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고 말하는데 ‘바른길’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이른바 ‘이재명 사법리스크’ 1라운드가 끝났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성남FC 배임·뇌물 혐의 사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은 이제 1심이 진행 중입니다. 유무죄가 엇갈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도 2심과 3심이 남아 있습니다. 이 밖에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도 여럿 있습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 표지 이야기는 한숨 돌릴 새도 없는 ‘이재명 사법리스크 2라운드’를 전망합니다. 사법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예측하기보다는 기약 없이 이어지는 사법리스크가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종합적으로 살펴봅니다. 진영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사필귀정’은 있을까요.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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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