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타인의 진심을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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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연설에 열광하는 지지자들 /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연설에 열광하는 지지자들 / 로이터 연합뉴스

박빙이라 예상됐던 미국 대통령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완승으로 끝났다. 투표 직전까지도 전망기관이나 주요 언론은 어느 쪽의 우세도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서 대부분 사전 예측은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선거 후에는 민주당 측의 선거 전략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공화당 측은 어떤 선거 전략을 실천했는지 분석이 분분하다. 지난 11월 5일 투표 당일의 출구 조사는 조사 항목이 매우 세분돼 있어 이러한 분석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후의 일이다. 사전에 한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예측은 매우 어렵다. 더욱 정확한 예측을 위해 조사기관은 설문 항목을 세분화하고 설문 기법을 정교하게 다듬지만, 언제나 한계에 봉착한다. 선거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돌발적인 상황은 거의 모두 예측을 벗어난다. 혁명이 그렇다. 혁명은 갑자기 일어난다. 1989년 공산권의 붕괴가, 2010년 아랍의 봄이 그렇다. 최근 국제정치 지형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우경화 경향이 강화되는 것도 사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선호 위장, 정책 결정에 왜곡 초래

정치적 사건에 대한 예측은 왜 어려울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은 정치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정한 정치적 주제를 놓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얼굴을 붉히고 의가 상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들의 모임이 잘 지속하도록 아예 모임에서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하기도 한다.

튀르키예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티무르 쿠란은 이 사안을 ‘선호 위장(preference falsific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회적 억압이 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선호를 드러내지 않고 지배적인 기준에 맞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1989년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혁명을 예로 들면, 시민들은 실제로는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형적으로는 공산당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지 않았다. 공산권 지도자들은 공산체제가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가 봇물 터지듯 공산체제가 무너졌다.

쿠란의 ‘선호 위장’의 의미는 억압이 클수록 충격은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선호 위장은 사회 전체의 정책 결정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여론을 잘못 읽어 독단으로 빠진다. 중요한 정책 결정을 매번 국민투표를 하여 실행하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 여론조사가 많이 활용되는데, 여론조사가 시민들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려면 단순히 의사를 묻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는 여론의 왜곡을 바로잡아주는 가장 중요한 기제다. 주기적으로 선거를 통해 민의를 확인할 수 있다. 선거에서 비밀투표로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매번 투표로 결정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많은 사안에 있어서 정치 지도자와 정책 결정자 판단에 따라 사회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진정한 의사와 정치 지도자, 정책 결정자의 판단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선호 위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이다. 반면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예컨대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의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패셔니스타로 고가의 옷을 입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평범한 브랜드여서 놀랐다는 경우다. 또는 우리 아파트단지 내 가구 소득 수준에 대해 주민들에게 추정해 보라고 하면, 평균에 근접해 대답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즉 정확히 맞추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얼마나 타인을 잘못 인식할까? 이 사안에 대해서는 경제학뿐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등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주로 경제학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검토한 최근의 리뷰 논문에 따르면(Leonardo Bursztyn and David Y. Yang·2022) 여론조사뿐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타인에 대한 오해는 아주 널리 그리고 깊게 퍼져 있다고 한다. 이 리뷰 논문은 지난 20년 동안 발표된 81편의 논문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 논문은 경제적 주제(타인의 소득에 관한 생각 등), 정치적 주제(당파적 이념 등), 사회적 주제(젠더에 대한 견해 등)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인식 조사를 포함하고 있다.

정치 양극화, 상대방 오해할 때 심화

논문의 결과는 네 가지 사항을 확인시켜 주었다. (1)다른 사람에 대한 오해는 단순히 측정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모든 영역에 걸쳐 널리 퍼져 있다. (2)다른 사람에 대한 오해는 매우 비대칭적이다. 즉 사람들의 믿음은 진실과 비교해 한쪽에 더 많이 치우쳐 있다. (3)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오해는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오해보다 상당히 작다. (4)자신의 태도와 신념은 같은 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태도와 신념에 대한 오해 또는 인식과 매우 깊게 연관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이 발간한 ‘한국의 여론 양극화 현상과 기제에 관한 연구’가 있다. 임원혁 교수 등 4명의 경제학자가 공동으로 작업한 이 보고서 내용은 학계의 선행연구와 궤를 같이한다. 보고서가 제공하는 재미있는 발견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정치 성향이 극단적인 경향이 있고 본인의 소득에 대해 과대추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해외와 국내 경제학계의 연구는 정치적 양극화도 이러한 타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려준다. 정치 양극화는 상대방을 오해할 때 심화한다. 자기편에 대한 확증과 다른 편에 대한 편견 또는 오해가 매우 깊게 형성돼 있다.

정치 지도자와 정책 결정자는 판단의 기준을 집단의 이해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상과 가치에 둬야 한다. 정치적 행위는 일상적으로는 집단의 이해를 추구한다. 따라서 결과는 편파적이고 갈등을 초래한다. 상대방에 대한 오해는 이러한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이런 때일수록 이를 극복할 리더십이 요구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당파를 넘어서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정치인들에게 당파의 이해를 넘어 사회 전체의 이상을 지향하는 담대한 용기를 기대한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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