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와 구글의 연구자들은 ‘1000개의 생성형 행위자(Agent) 시뮬레이션’이라는 논문을 공개했다. 이 연구는 실존하는 1000여명의 미국인의 태도와 행동을 복제해 인공지능(AI) 행위자 1000대를 만들었다. 사람마다 각 2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과 가치관 등을 대화 그대로 기록한 후, 이를 생성형 AI 모델에 일종의 기억으로 제공하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1000개의 가상 AI 행위자와 실제 1000명에게 다양한 사회과학 실험지로 질문했더니 85%의 동기화율을 보였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삶과 사회의 행위자들이다. 이들이 모여 사회를 움직인다. 이들의 향배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면 이들과 접해야 하는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기업도, 위정자들도 그들의 의도와 성향을 알려고 애쓰고, 유행이나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움직임을 만드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치권을 시끄럽게 하는 여론조사 대소동도 그래서 종종 일어난다.
여러 오차를 참작하더라도 85% 동기화라면 1000명의 생각을 읽어내는 데 종래의 인구통계학 데이터나 페르소나를 흉내 내는 방식보다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체크박스를 표시하는 것과 장시간의 대화 사이마다 숨겨진 인간 행동의 뉘앙스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짧게라도 지난 경험을 알려주는 단어 하나를 무심코 말했을 때 그 단어가 지닌 함축을 읽어낼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집단행동을 조사하는 데 엄청난 잠재력이 엿보인다. 새로운 공공정책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델링(모형화)하거나, 각종 캠페인을 위한 다양한 메시지 전략의 효과를 테스트하는 데도 요긴할 것이다.
편리함을 깨닫고 난 뒤에 위정자는 시민들을 AI와 의무적으로 대화시킨 뒤 시민 개개인에 대한 파악을 끝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제 지자체는 귀찮고 번잡하게 매번 나의 의사를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내 취향과 이상과 편견과 아집마저 85%의 확률로 학습한 나의 지치지 않는 분신들에 질문 세례를 퍼부으며 내가 원한다고 추론한 동네를 꾸며 줄 수도 있을 터다.
그리고 그 동네가 나를 위한 동네인지 내 분신을 위한 동네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찾아올 차례다. 본 논문의 제1 저자인 스탠퍼드대의 박준성씨는 이미 지난해에 25개의 AI로 만들어진 가상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논문으로 화제가 됐다. 가상마을에서 가상 캐릭터는 스스로 파티를 계획하고 친구도 만들며 생활한다. 영혼 없이도 생활은 가능하다는 증명이었다.
이제 그 가상 캐릭터들은 나를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그들의 파티를 계획하고 친구를 만들 능력과 환경이 있다고 한들 내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데 그것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미래에 아니 이미 우리는 기계 어시스턴트(assistant·조수)에게 개인화된 조언을 구하고 의사결정의 도움을 받고 있다. 만약 내 삶의 경험, 가치, 신념을 그들이 흡수할 수 있게 돼 점점 동기화될 수 있다면, 기업과 정부가 보기엔 오차범위 안의 편리한 쌍둥이로 생각될 터다. AI엔 아무런 의식도 자아도 없고, 그건 오롯이 내게만 있지만 언젠가는 그 누구도 진짜 나에게는 진짜 질문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짜 질문? 예를 들면 투표 같은 것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