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전북 장수 영월암-쉼이 필요했던 날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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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 (76) 전북 장수 영월암-쉼이 필요했던 날의 아침 풍경

연말이 다가올수록 몸이든 마음이든 지쳐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하루쯤은 쉬고 싶다고, 마음 놓고 쉬고 싶다고 되뇌곤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느껴지는 어느 날이었다. 전북 장수는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던 곳이었다. 한국의 오지를 이야기할 때, 강원도를 빼면 의외의 지역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무진장’이다. 무주, 진안, 장수. 전주와 대전이 가까워 무슨 오지가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한국 최고의 오지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그중 장수의 영월암을 찾았다. 인연 있던 스님이 그곳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스님 내려갈게요.” 전화기 너머에서 스님은 흔쾌히, 언제든 내려오라고 하셨던 참이다.

푹 쉬라면서 스님은 방의 한쪽을 내주셨다. 차를 마시는 동안 며칠 전 보았다는 절 아랫마을의 운무를 이야기해 주셨던 게 아른거려 늦잠을 잘 수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절의 위로 올랐다. 맞은편 산 아랫마을에는 운무가 가득했다. 보통 봄이나 가을의 물안개는 물가 주변에서 피어오르게 마련이다. 큰 강이 없는 산서면에는 조그만 물길만이 졸졸 흐르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안개가 피어올라 마을 위를 덮었다. 가을 아침의 맑은 풍광이 눈에 가득 담겼다.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던 피로감마저 저 안개 위로 스르륵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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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