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관리소 피해 여성 “성병 아닌데도 주사 맞혀” 증언
“국가 책임” 판결에도 사과 없어…역사 증거로 남겨야
“지옥 같았다.” 45년 전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의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에 강제 수용됐던 일주일의 시간을 여성 A씨(66)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10월 15일 기자와 만난 A씨는 동두천시가 국가 폭력과 여성 착취의 현장인 성병관리소를 철거하려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는 “그곳에서 있었던 것도 억울한데 하나 남은 성병관리소를 왜 없애느냐”며 “달러벌이를 해준 미군 위안부를 이제와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A씨는 스물한 살 때인 1979년 지인과 동두천시에 놀러갔다가 성병관리소에 끌려갔다. 갑자기 남성들이 다가오더니 검진증을 요구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A씨가 검진증은 없고 신분증은 집에 두고 왔다고 하자 남성들은 그를 승합차에 태워 성병관리소로 데려갔다.
A씨는 당시 미군과 결혼해 아기가 있었고 성병에 걸린 상태가 아니었지만 성병관리소에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검진도 안 했어요. 성병이 없었는데 페니실린을 놨어요. 왜 주사를 놔주는지 몰랐지만 다들 주사를 맞는 거예요. 기운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아기 낳을 때라고 하죠. (고통이) 그것보다 더한데, 그렇게 몇 시간을 아팠어요.”
A씨는 “언니, 이모들이 많았다”며, 그중에서도 특히 페니실린을 맞고 기절했던 한 언니가 기억난다고 했다. A씨는 “(정신이 없는 듯) 이마를 계속 (쇠에) 찧어서 죽는 줄 알았다”며 “달걀과 콩나물국이 있어 이거라도 먹으라고 했는데 조금 먹더니 막 울어서 같이 울었다”고 했다. 1995~1997년 보건소에서 근무한 한 의사는 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낸 국가배상 소송 재판에서 페니실린 투약의 위험성을 증언했다. 이 의사는 “(페니실린은) 저렴하고 효력이 강력해 각광을 받기는 했지만 갖은 쇼크의 원인이 되는 부작용도 있는 약이었다”며 “그때도 이미 쇼크사 때문에 의사들로서는 회피하는 약이었는데, 그 약을 썼다”고 했다.
일각에선 위안부 여성들이 돈벌이로 성매매한 것 아니냐며 인권 침해를 부정하는 주장도 편다. 그러나 법원은 설령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조장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강제 성병 치료를 한 것이 위법의 핵심이라고 했다. 군사동맹의 공고화, 국가안보 강화, 성매매 활성화를 통한 외화 획득이라는 국가의 목적 달성을 위해 위안부 여성들은 도구가 됐다는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과거 논문에서 “기지촌 형성 과정은 식민지배자의 피식민지 여성에 대한 지배, 군대 위안소의 유지, 남성 성욕의 안전한 배출과 성병 통제, 외화벌이와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었다”며 “단순한 성인의 성적 거래 관계나 성적 자기 결정권의 논리로 접근하기 힘들다”고 했다.
A씨는 성병관리소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힘들지만 말해야 한다고 했다. 성병관리소 철거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다. A씨가 말했다. “제발 성병관리소 안 없애게 해주세요. 다음 세대에 또 모르는 거예요. 이스라엘도, 러시아도 전쟁을 하잖아요. 우리나라가 전쟁 안 난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러면 또 여성들은 그런 일을 당할 수가 있어요. 절대로 잊지 못해요. 제가 성병관리소의 증인이에요. 예전의 젊은 여성들이 성병 주사를 맞고 죽었다는 것을 증거로 남겨놔야죠. 정부가 그걸 때려부수면 되나요?”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