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사태 복사판’ 고려아연 쟁탈전···웃는 쪽이 있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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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한 달 만에 50% 급등…공개매수 끝난 후 파장 우려

경영권 다툼 뒤에 법의 심판 불가피…투자 신중할 필요성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가운데)이 지난 10월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가운데)이 지난 10월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누가 이기든 무슨 상관인가.” 지난 10월 15일 주식시장 마감 후 고려아연 주주 A씨가 한 말이다. 고려아연 주가는 이날 83만1000원까지 치솟으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10월 15일 종가 기준 81만7000원). A씨는 전날 끝난 영풍·MBK파트너스(한국기업투자홀딩스) 연합 측 공개매수(매수가 83만원)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한쪽이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여기서 주가가 크게 빠질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내일 30% 폭락해도 수익인 만큼 공개매수를 위한 마지막 거래일(10월 21일)까지 보고 있다가 장내 매도하고 나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쟁은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돈 주울 기회”라고 덧붙였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공개매수 경쟁이 막바지에 이르며 계산기를 손에 든 개인투자자들도 바빠지고 있다. 고려아연·베인캐피탈 공개매수(매수가 89만원) 종료 전까지 수익 극대화 지점을 찾는 것이다. 먼저 공개매수가 끝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확보한 지분은 5.34%(110만5163주)로 애초 목표한 최소물량에 미치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추가 매수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양측의 지분 모으기로 전체 주식 유통량 중 상당수가 시장에서 회수됐다. 투자자들이 아직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거나 되레 새로 뛰어드는 이유다.

반면 공개매수가 일단락될 때까지 변수가 많다는 점은 투자자를 고민하게 한다. 지난 10월 16일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과 영풍에 대해 각각 회계심사에 착수한다고 통보했다.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제재는 불가피하다. 더 큰 문제는 공개매수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다. 영풍·MBK 파트너스 연합은 고려아연 측 공개매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공개매수 종료 전에 판결이 나올 예정인 만큼 결과에 따라 주가는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지난 10월 15일 고려아연 주주 A씨가 보내온 네이버 주주인증

지난 10월 15일 고려아연 주주 A씨가 보내온 네이버 주주인증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13일이다. 직전 거래일이었던 9월 12일 종가 기준 55만6000원에서 주가는 한 달 만에 50% 가까이 뛰었다. 고려아연은 유가증권(코스피) 시장 상장 후 전례 없던 주가를 기록 중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단기 주가 상승을 이끈다는 것은 이번에도 확인됐다. 문제는 축제가 끝난 뒤 남는 후유증이다. 지난해 ‘K팝 개척자’로 불린 에스엠(SM) 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둘러싸고 카카오와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하며 격돌했다. 그 결과, 현재 카카오 창업주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 이하 경영진이 ‘시세조종’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16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에스엠 주가는 지난 10월 16일 종가 기준 6만5700원이었다.

고려아연 쟁탈전, 누가 우위인가

고려아연은 주식 투자자들에게 배당주로 여겨졌다. 산업 기초 소재인 아연, 연, 은 등 비철금속을 제련(광석을 녹여서 함유한 금속을 분리·추출·정제하는 것)하는 것이 주업종인 만큼 수요나 경기 변동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이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매출, 영업이익 등을 거두며 2019년 이후로는 꾸준히 배당수익률 3%를 보장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배당과 함께 독특한 지배구조로도 유명했다. 최대주주가 코스피 상장기업 ‘영풍’이다. 경영은 최씨 일가가 하지만 장형진 고문 등의 영풍 창업주 일가 지분이 섞여 있어 ‘누가 지배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다. 양측의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구조가 오랫동안 이어지며 미담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이 동업 구조는 종말을 맞았다.

장 고문의 영풍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가져오려 한다. 고려아연이 상장회사인 만큼 승패는 주식 지분으로 갈린다. 영풍이 최대주주지만 양측 우호 지분을 그러모으면 비등하다. 이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월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고려아연 반기보고서(6월 30일 기준)를 살펴봤다. 이를 보면 고려아연의 총유통주식 수는 2070만3283주다. 최대주주인 ㈜영풍은 약 25.4%인 525만8797주를 보유했다. 장 고문과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이 104만392주, 영풍 쪽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계열사(에이치씨·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씨케이·시그네틱스·영풍전자)가 보유한 주식이 56만65주다. 모두 합치면 장 고문 측 우호 지분은 685만9254주로 전체의 약 33.13%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현 경영진인 최 회장 측 우호지분도 계산해볼 수 있다. 최 회장과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이 244만4138주다. 최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계열사(영풍정밀·유미개발·해주최씨준극경수기호종중·경원문화재단)가 보유한 주식은 79만1600주다. 총 323만5738주로 전체의 약 15.63%다. 그런데 당시 증권가는 현대차그룹, 한화그룹, LG화학, 한국타이어 등 협력사가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도 최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했다. 이들이 빠짐없이 최 회장 편에 선다면 총주식 수는 703만8016주로 전체의 약 33.99%다.

‘SM 사태 복사판’ 고려아연 쟁탈전···웃는 쪽이 있긴 할까

‘공개매수’ 시작과 함께 양측 지분에 변동이 생겼다. 영풍은 지난 10월 15일 공개매수(매수가 83만원)로 110만5163주, 전체의 5.34%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영풍 쪽 우호지분은 796만4417주, 전체의 38.47%로 상승한다. 같은 기간 최 회장 측 우호지분에도 변동이 생겼다. 고려아연이 10월 11일 공시한 공개매수설명서에 따르면 최 회장 측 지분은 10월 2일 기준 최 회장 및 특수관계인(친인척 포함)이 보유한 323만9131주(15.65%)다. 여기에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49만9696주(2.41%)까지 합치면 전체의 약 18.06%가 된다. 관건은 현대차, 한화, LG 등의 기업과 반기보고서 기준 162만375주(전체의 7.83%)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국민연금이 증권가 예측대로 최 회장 손을 들어줄 것이냐다. 이를 확신할 수 없는 고려아연은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10월 11일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주당 89만원에 전체 주식 약 20%에 해당하는 414만657주를 오는 10월 23일까지 공개매수한다고 발표했다. 고려아연이 362만3075주, 베인캐피탈이 51만7582주를 매입하는 방식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최 회장 측은 협력사 지분과 별개로 787만9484주를 확보해 최종 지분이 38.06%가 된다. 투자자들은 계산기를 다시 한번 두드려 봐야 할 상황이 됐다.

누가 끝에 웃을까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시장에 나와 있는 주식 물량이다. 영풍, 고려아연 측이 확보한 주식을 모두 더하면 1170만3244주다. 이 경우 최대 유통 가능 주식 수는 약 900만주다. 그런데 현대차, 한화, LG 등 기업과 국민연금은 현재 보유 주식을 그대로 갖고 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이들 물량을 제외한 최소 유통가능 주식 수는 357만7386주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하겠다는 물량에 미치지 못한다. 이에 따라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하나는 고려아연 측이 밝힌 매수 목표물량에 응모주식 수가 미치지 못할 때다. 89만원에 모든 응모자가 매도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 등이 참여해 전체 응모주식 수가 고려아연 측 목표물량을 초과할 경우다. 이 경우는 ‘안분비례’ 방식으로 나눠서 매수한다. 쉽게 말해, 공개매수 목표물량에 두 배가 응모할 경우 투자자가 10주를 응모하면 그 절반인 5주만 매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개매수가 끝나면 주가가 폭락해 매도하지 못한 주식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다만 현 상황에선 국민연금 보유분이 전부 공개매수에 응해도 약 520만주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쪽 모두에게 주식을 팔아서 수익을 남기겠다는 전략도 나온다. B씨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에 83만원에 판 주식 대금이 들어오면 다시 주식을 사서 이번엔 고려아연 측에 팔 생각”이라며 “분수령이 10월 21일이 될 것 같다. 그 전에 장내매도 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21일이 고려아연 측 공개매수에 응모하기 위해 주식을 보유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다. B씨 전략에서 추가로 따져볼 것은 세금 정도다. 본래 공개매수는 장외거래인 만큼 차익에는 소득세법에 따라 양도소득세(세율 22%)가 부과된다. 차익이 250만원(기본공제) 이하라면 0.35% 수준의 증권거래세만 내면 된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 베인캐피탈 공개매수가 이에 해당한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한 주식은 소각 예정이라고 발표한 만큼 실질적 배당(의제배당)과 같다. 이에 따라 차익에 대해 배당소득세(세율 15.4%)만 부과된다. 전략만 잘 짜면 추가 수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해당 전략을 선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 측이 법원에 제기한 ‘고려아연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 때문이다. 법원 결정에 따라 공개매수가 중단되며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 측은 한차례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됐다. 1차 가처분 신청의 쟁점은 ‘자본시장법상 고려아연은 영풍의 공개매수 기간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는 특수 관계인 아니냐’는 것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고려아연 손을 들어줬다. 2차 가처분 신청에선 쟁점이 바뀌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 측은 ‘업무상 배임’과 ‘자사주 매입 규모를 이사회에서 결정할 수 있느냐’를 들고나왔다. 배임의 경우 최 회장 측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공개매수를 진행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는 이들 역시 경영권 분쟁 후 주가가 종전가격(55만원대) 수준으로 돌아갈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또 다른 쟁점은 고려아연 측 공개매수는 회사에 쌓인 임의적립금을 사용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식인데 이를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결정으로 할 수 있느냐다. 하나라도 인용될 경우 자사주 매입은 중단된다. 고려아연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공개매수가 끝난 기업의 주가는 시작점 수준으로 회귀한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남는 것은 누군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주식을 샀다는 사실이다. 사모펀드는 각종 옵션 등을 통해 경영권 획득에 실패해도 큰 손실을 보지 않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장 고문과 최 회장 역시 개인 재산을 털어서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비싸게 산 주식을 마지막에 떠안아야 하는 것은 영풍과 고려아연이다. 이는 경영권 다툼이 끝난 후 법의 심판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려아연은 지난 10월 17일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 벌어진 ‘단시간 주가 급락’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혐의는 ‘시세조종’이다. 1년여 전 벌어진 SM 쟁탈전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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