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영광군수 재선거…민주당 텃밭에 혁신당 도전장
“군수 선거인데 대통령선거보다 더 해. 어제(9월 23일)는 이재명 대표가 왔고, 오늘은 조국씨가 요 앞 사거리 신호등에서 손 흔들어주고. 대표들까지 줄줄이 오는 건 첨 봤어. 완전 대선이야.”
전남 영광군의 영광터미널시장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정모씨(67)는 근래 TV에서나 보던 정치인들을 코앞에서 보는 일이 잦다. 오는 10월 16일 열리는 영광군수 재선거 때문이다. 인구 5만1000명의 작다면 작은 지방자치단체, 잔여 임기 20개월의 군수를 다시 뽑는 선거치고는 열기가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주민들 스스로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부르는 이 지역에 조국혁신당(혁신당)이 도전장을 내면서 선거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영광군을 찾아 이번 재선거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혁신당 ‘고인물론’에 선거판 출렁
주민들은 과열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다. 이날 오후 영광종합버스터미널 대합실 TV의 뉴스 방송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광 거리 유세 장면이 나오자 한 무리의 노신사들은 TV를 가리키며 “여 거시기 나왔네”라며 반색했다. 터미널 인근 카페에는 “조국씨도 아까 저 앞에 있더만”이라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영광군수 재선거에 민주당은 영광군의원과 전남도의원을 지낸 장세일 후보(60)를, 혁신당은 사회복지학자 장현 후보(67)를 냈다. 추석 전후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
한발 먼저 움직여 이 선거판을 띄운 건 혁신당이다. 조국 혁신당 대표는 지난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호남 전체에서 민주당(집권)은 30여 년이 넘었다”며 “당대표가 된다면 첫 번째 할 일이 10월 16일 (재보궐선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 회의”라고 했다.
혁신당이 꺼낸 민주당 ‘일당 독점론’, ‘고인물론’은 영광 주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듯 보였다. 영광에서 농사를 짓는 60대 함상호씨는 “여그는 한 간디(군데)만 거시기했는디, 한쪽만 계속하면 좋을 게 없다. 경쟁하는 게 더 낫다. 혁신당이 열심히 한다. 잘하면 될 것도 같다”고 했다. 영광터미널시장에서 만난 70대 시민도 “무조건 민주당이라는 인식이 바뀌어야지”라고 했다.
켜켜이 쌓인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도 있다. 민주당세가 강하다 보니 그간 이 지역에서는 민주당 당내 경선이 본 선거 못지않게 중요했다. 민주당 공천 경쟁이 치열했고, 잡음도 많았다. 혁신당의 장현 후보 역시 이번 재선거에서 민주당 경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가, 경선 직전 후보 선출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민주당을 탈당했다.
물론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40대 황모씨는 “민주당에 계시다가 마지막에 혁신당으로 가셨다. 안 될 것 같으니까 탈당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반면 선거철마다 나오던 공천 잡음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50대 시장상인 임모씨는 “경선 과정이 잘못됐다. 민주당 찍어주기 싫다”고 했다. 택시기사 조모씨(68)도 “지난 총선 때도 이석형 후보를 컷오프했는데 경선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광이나 함평에서는 이개호 의원이 표 많이 못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원선거에서 영광군은 담양·함평·장성군과 한 선거구로 묶여 있는데, 민주당 이개호 의원이 지난 22대 총선까지 내리 4선을 했다. 지난 총선에서 이개호 의원이 민주당 후보로 단수공천되자, 컷오프된 이석형 후보가 “황제·밀실·셀프공천”이라 반발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토백이 민주당, 이변 없다”
혁신당이 조국 대표의 현장 숙식 선거운동인 ‘호남 월세살이’, 현장 최고위원회의 개최 등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자 민주당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민주당은 지난 9월 23일 영광에서 최고위를 개최하고 이튿날에는 또 다른 군수 재선거 지역인 곡성으로 향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호남 월세살이에 나섰다. 군수 선거에 양당 대표가 열을 올리는 건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야권 내 위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당이 선전한다면 당장 202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당내 경선 결과에 불복한 인사들이 줄줄이 ‘민주당 탈당-혁신당 입당’을 할 수 있다.
텃밭을 수성해야 하는 민주당의 전략은 ‘정권심판론’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9월 23일 영광에서 “이번 선거는 군수가 누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닌 정권에 다시 회초리를 들어 책임을 묻는 선거”라고 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민주당 지도체제 전체가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도 했다.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10월 재보선부터 경쟁구도로 가면 진보세력의 분화가 시작된다. 지금은 단결해서 정권교체에 매진해야 한다”고 했다.
민심의 반향은 크지 않아 보였다. 영광읍에서 농약사를 운영하는 60대 김영순씨는 “지방선거는 하등의 당이 필요없당게. 물론 대선 같으면 이재명씨 가는데, 이번에 혁신당한테 간다고 배신한 거는 아니고”라고 했다. 약국을 운영하는 A씨도 “군수 선거에서 혁신당을 찍는다고 분열은 아니죠”라고 했다. 60대 택시기사 황모씨도 “대선도 아직 멀었잖아요. 위기라고 하는 게 옛날엔 먹혔지만, 인자는 안 먹힌다. 여기 사람들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다”라고 했다.
물론 민주당이 믿을 구석은 있다. 오랜 지지세다. 택시기사 황씨는 “여기가 토박이 민주당이다. 손님들 태우고 돌아다녀 보면 큰 변화 없다”고 했다. 영광터미널시장에서 만난 60대 남성도 “나만 해도 옛날에 평민당(평화민주당) 가입을 했던 사람이다. 하루아침에 바뀌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거대 야당으로 규모면에서 혁신당을 압도한다는 점 역시 이점이다. 40대 황씨는 “아무래도 당에 힘이 있는 쪽을 뽑는 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열띤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진보당이 변수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진보당은 이번 재선거에 농민운동가 이석하 후보(53)를 냈다. 50대 시장상인 임씨는 “2파전이 아니라 3파전이다. 진보당이 새벽같이 집게 들고나와서 쓰레기 다 줍고, 할매들 고추도 다 따주고 마음을 흔든다. 보이는 거로는 월등하다. 열심히 하는 걸 봐선 기회 한번 줬으면 싶다”고 했다.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정씨도 “진보당 사람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 전부터 거리를 싹 다 청소하고 있다. 당선되면 그때뿐 아니냐. 군민을 위해 애쓰는 사람 뽑아줘야 한다”고 했다. 바닥 민심은 흔들었지만 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70대 택시기사 박모씨는 “칼도 갈아주고, 논에 풀도 베 주고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이 잘하는데 이게 참 표로는 안 갈 것 같다”고 했다.
“당보다 인물을 보겠다”는 의견도 많았다. 영광은 지난 8번의 군수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5번, 무소속 후보가 3번 당선됐다. 때때로 민주당 지지세에 변화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전임 강종만 군수는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서 2번 당선되고도 뇌물수수,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2번 다 중도에 하차했다. “어떡하면 한 푼 뜯어 먹을까, 전부 그런 놈들 아니냐(80대 시민)”는 정치혐오가 민심 깊숙한 곳에 자리한 배경이다.
그간의 군정에 대한 불만도 크다. 영광군은 재정자립도는 낮지만 원자력발전소가 내는 지방세(지역자원시설세), 국·도비 보조금 등으로 인해 예산 규모가 작진 않다. 지난해 영광군은 국·도비 보조금 112억원을 반납하고도 남은 돈(순세계잉여금)이 370억원에 달했다. 예산을 과다하게 짰거나 비효율적으로 예산을 운영했다는 얘기다. 남아도는 예산에 장현 혁신당 후보는 전 군민에게 영광행복지원금 120만원 일괄 지급을, 장세일 민주당 후보는 군민 1인당 연간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했다. 적재적소에 자원을 배치하는 정교한 정책공약이라기보단 선심성 공약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40대 후반의 택시기사 B씨는 “돈 준다 하는데, 누가 돼도 주니까 이놈 저놈 찍지 않겠어요? 정작 필요했던 방폐장 관련 시설은 딴 데 가버리고.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요. 제가 여기서 20년 택시 몰았는데 변한 게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