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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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여성단체이자 인권단체이자 양육자단체의 활동가로서, 업무상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검색해야만 했다. 대략 예상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나이 50을 바라보는 이 닳고 무뎌진 사람의 입에서도 ‘지옥 같다’라는 말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최근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만연한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언론 보도와 엑스(구 트위터)상에 떠도는 전국 500여곳의 피해학교 목록을 접한 우리 여성과 어린이·청소년들 그리고 양육자들의 세계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논란 이후, 즐기는 것 외의 목적으로 예컨대 자신의 피해를 확인하거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딥페이크 성범죄를 접했을 수많은 청(소)년의 영혼을 위해 속절없이 애도한다. 무뎌지지도 닳지도 않은 10대 시절 나의 영혼을 떠올려 보면, 그들 모두가 희생자라는 걸 느낀다. 영혼의 대량 학살. ‘신뢰’, ‘안전’에 대한 감각은 완전히 달라지거나 또는 사라졌다. 소셜미디어(SNS)상의 사진을 모조리 삭제한다 해도 결국 나의 존재 자체를 삭제할 수는 없기에, 사진을 찍혀서도 안 되고 기록되면 안 되고 그 누구도 믿으면 안 되는, 그런 허깨비 같은 존재 방식을 이 청(소)년들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삶은 살만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 개인정보 보안기업 시큐리티 히어로가 발표한 ‘2023 딥페이크 현황’에 따르면 2022년 3700여건이던 딥페이크 포르노물은 2023년 2만 1000여건으로 464% 증가했다. 피해자의 99%는 여성이며, 그중 53%가 한국인이다.”

지난 8월 2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언론에 보도된 딥페이크 봇이 탑재된 텔레그램 방 이용자 22만명 중 한국인은 700여명에 불과하다며 ‘위협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전 세계 텔레그램 이용자 중 한국인 비율을 단순 적용한 추산이다. 그러나 인터넷 개인정보 보안기업 시큐리티 히어로가 발표한 ‘2023 딥페이크 현황’에 따르면 2022년 3700여건이던 딥페이크 포르노물은 2023년 2만1000여건으로 464% 증가했다. 피해자의 99%는 여성이며, 그중 53%가 한국인이다. 해당 보고서의 수치는 딥페이크 동영상만 다룬 것으로 합성사진을 이용한 범죄를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오히려 ‘과소평가’되고 있다. 이준석 의원은 왜 가해자의 국적에 집착하는가? 가해자가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는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이준석씨 본인이야말로 국회의원의 본분을 다하려면, 한국 여성·한국 남성 간의 젠더 갈등을 조장해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저열함에서 부디 탈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바란다. N번방, 박사방 사건을 겪고도 국가적 재난을 막지 못했다.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 없이는 가해자를 특정하고 처벌하기 어렵다. 이로써 텔레그램 성범죄 피해 신고자들은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져야 했고, 가해자는 웃었고, 성범죄는 확대 재생산됐다. 2021년 서지현 검사가 팀장을 맡았던 법무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의 권고대로 텔레그램 등 외국 기업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시 국내 앱스토어에서 해당 앱을 삭제하는 등 강경하게 제재해야 한다. 2020년 법원이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했지만, 이번에는 한국이 외국인 가해자를 송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린 지킬 수 없고, 살릴 수 없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우린 달라져야 한다.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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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