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 익숙함 사이…‘대치동’ 드라마·영화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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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 강사’ 이어 최근 드라마 ‘졸업’· 영화 ‘대치동 스캔들’ 잇달아

드라마 <졸업>에서 극 중 대치동 학원 국어과 강사인 서혜진(정려원 분)이 강의하고 있는 장면 / tvN 제공

드라마 <졸업>에서 극 중 대치동 학원 국어과 강사인 서혜진(정려원 분)이 강의하고 있는 장면 / tvN 제공

“대한민국 다 무너져도 저 욕망이 남아 있는 이 동넨 절대 안 무너질 거거든.”

지난 6월 30일 종영한 tvN 드라마 <졸업> 1화, 남자 주인공 이준호(위하준 분)와 ‘대치동 친구들’의 술자리. 결혼을 앞둔 한 친구가 강남 밖에 신혼집을 알아본다는 말에 준호의 가까운 친구 최승규(신주협 분)는 ‘안면몰수’하고 부모의 집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대치동에 남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서울대 과점퍼를 입은 이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졸업>의 공간적 배경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다. 여자 주인공 서혜진(정려원 분)은 대치동 학원의 국어과 강사로 ‘등급 올리는 귀신’이라 불릴 만큼 잘나가는 강사다. 준호는 고등학교 1학년 첫 모의고사에서 8등급을 받았지만, 혜진의 수업을 받으며 1등급까지 오른 ‘기적’적인 인물.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다가 혜진이 있는 학원에 강사로 들어오면서 드라마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주요 이야기로 풀어낸다.

“<봄밤>(2019)과 같은 로맨스 드라마인 줄만 알았는데 마지막 회를 보니까 <하얀거탑>(2007)에 가깝더라고요.”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졸업>을 연출한 안판석 PD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대치동 학원가에서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더 높은 탑을 쌓고 싶은 강사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경쟁과 배신, 한편으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인간적 고민 등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랬다.

실제 두 사람의 로맨스 서사 이외에 드라마 배경, 등장인물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은 6.6%(최종회). 시청률 측면에서 성적이 눈에 띄진 않았지만, 정려원은 지난 6월 3주 연속 화제성 배우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올랐고, 극 중 학교 교사 출신 국어 강사 표상섭(김송일 분)의 무료 강의 장면은 ‘현실 고증’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제 일타 강사들이 언급할 정도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였다. 이 장면은 유튜브에서 tvN 드라마 공식 계정 기준 2주 만에 조회 수 10만여회를 기록했다.

■욕망과 갈등이 자라는 곳···‘대치동’ 드라마·영화들 줄이어

<하얀거탑>이 대형병원의 속살을 드러냈다면 <졸업>은 주인공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대치동이 어떤 곳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최근 ‘대치동’을 콕 집어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와 영화가 늘고 있다.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한 장면 / tvN 제공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한 장면 / tvN 제공

앞서 지난해엔 전도연·정경호 주연의 드라마 <일타 스캔들>(tvN)이 최종회 시청률 17%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았다. 고소득을 올리면서 팬덤을 형성한 일타 강사(일등 스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과 조카를 키우며 ‘대치동 학부모’의 세계에 뛰어든 남행선(전도연 분)의 로맨스를 주요 서사로 한다. <일타 스캔들>은 대치동이란 이름을 ‘강남구의 모 학원가, 녹은로’로 대치했지만, 화면엔 대치동 학원가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다. 지난 6월 19일 개봉한 영화 <대치동 스캔들>의 주인공 안소희 역시 대치동 학원의 국어과 일타 강사로 분한다. 대치동 일타 강사를 주인공으로 한 <대치동 1들의 전쟁>(가제)이란 드라마도 기획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대치동을 왜 작품 배경으로 삼을까. 윤석진 교수는 “대치동은 열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특성이 있다”며 “그곳을 내밀하게 엿볼 수 있다는 부분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고 했다. 윤 교수는 “학교라는 공간에선 교사가 그래도 여전히 어느 정도는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지만, 사교육 현장은 정글 같은 곳이다 보니 그 안에서 극적인 갈등 구조들, 첨예할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 형성될 것이기에 드라마화하기에 적합한 요소들이 있다”고 했다.

‘접근하기 어려움’이라는 측면에선 역설적이지만, 대치동이 한국사회에서 익숙한 공간이 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치동을 누구나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강(인터넷 강의)도 있고 현우진·이지영 등 일타 강사가 인플루언서로서 자리 잡으면서 대치동도 일상적인 공간이 됐다”며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최전선이기도 하고, 그런 공간에서 갈등이나 에너지들이 있고, 또 강사라는 인물이 등장하니까 동경하는 캐릭터도 넣을 수 있다 보니 작품화하기 좋은 배경인 것 같다”고 했다.

■대치동, 일타 강사···선망과 비판 사이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일타 강사가 출연하고 이들이 자체 제작한 영상 콘텐츠들이 유튜브 등에서 화제를 모으는 건 꽤 흔한 일이 됐다. 성적 올리기, 문제 풀이, 학습법 공유 등을 소재로 한 동영상 콘텐츠들에 울고 웃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위시한 입시판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신간 <수능 해킹>에선 이런 흐름을 “공부의 문화화”라고 했다. K팝 향유자들의 아이돌과 같이, 일타 강사가 수험생의 우상이 됐음을 의미한다.

<수능 해킹>의 공저자인 문호진 교육평론가는 ‘대치동 일타 강사’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관심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했다.

“예전에는 일타 강사라고 해도 꼭 대치동에서 활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대치동 일변도가 됐고, 그것을 (대중문화에서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치동 강사이면서 인강 강사들은 수험생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입시 대비 측면에서는 지방이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지방에서도 여유가 있는 가정의 학생들은 주말이면 대치동으로 몰려갑니다. 학원 강의와 숙소를 묶은 패키지 상품을 팔죠. 대치동이 오프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화됐다는 측면이 (대중화가 되는 영향이) 있을 것 같고요.”

일타 강사에 대한 선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문호진 평론가는 “K팝이 빈틈없이 굴러가는 세계처럼 보이듯이, 사교육 자체가 고도화하면서 그 안의 일원이 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선망이 자란다”고 했다. 김교석 평론가는 “일타 강사들이 선한 영향을 미친다고도 하는데, 그것이 <졸업>에서도 일면 보여준 것 같다”고 했다. <졸업>의 서혜진은 드라마 초반엔 강의 중 문제풀이를 하면서 “공감하려고 하지 마, 외워”라며 사교육이 성적 올리기에 매몰돼 있고, 문제 풀이 기법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다 드라마 후반 서혜진은 어떤 계기로 강의 스타일을 바꾸면서 학부모들 앞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작품을 읽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강사들의 치열한 논쟁은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체한다는 주장 앞에서 공교육을 더 쪼그라들게 만든다.

다만 “작품에서 현실보다 사교육을 미화했을 때 (사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이) 가려질 우려”(김교석 평론가)는 공존한다. 사교육이 참전해 “초등학교 5학년에게 기본교육과정보다 6년을 앞당겨 고등학교 수학(상)까지 가르치는 학원의 진도 속도”(사교육걱정없는세상·‘초등의대반’ 실태조사 결과·7월 1일 발표)를 우리 사회가 따라가자고 할 순 없는 일이다.

<수능 해킹>은 사교육에 대한 악마화·신화화를 벗어나 실질을 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공교육이 위기를 맞은 것은 교사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교육 당국의 정책 설계에서 파생된 구조적 문제임을 짚는다. 이 책은 사교육 업계가 의도와 상관없이 젊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가해자임을 지적한다. “수능이 고도화하고 N수가 일반화하면서 반수생을 비롯한 N수생들이 조교 및 출제·검토 업무를 병행해 사교육비를 벌면서 산업의 하부를 지탱하는 구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학습과 노동의 경계가 흐릿한 곳에서 ‘열정페이’를 받는 젊은 노동자들이 지금 대치동 사교육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는 한 축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문 평론가는 “일타 강사들의 실제 역할이나 캐릭터가 평면적이지 않다.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표면상에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더라도 결국에 그것이 나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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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아들 노다 마사아키가 쓴 <전쟁과 죄책>에는 포로의 목을 베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관동군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도미나가 쇼조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베는 ‘담력’ 교육 도중 한 초년 병사가 “불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불교도로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던 이 병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나치 대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101예비경찰대대 빌헬름 프라프 대대장은 유대인 학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 병사들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10명 남짓 병사가 앞으로 나왔고, 그들은 소총을 반납하고 대기했다. 그 병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각 부대에서 학살 임무를 거부한 병사와 장교들이 속출했지만, 나치 독일의 가혹했던 군형법은 이들에게 명령불복종죄를 비롯한 어떠한 형사처벌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