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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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사건을 ‘안전’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 것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경향신문에 보낸 입장문을 읽어보면서였다. 임 전 사단장은 300쪽 넘는 입장문 내내 채 상병 사망과 관련해 자신에게 안전조치를 할 책임과 의무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법률적으로 임 전 사단장 주장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경북경찰청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하고 있으니 무엇이든 결론이 날 것이다. 그러나 사단장만 혐의를 벗으면 그만인 것인가. 그러면 제2, 제3의 채 상병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가. 우리에겐 무엇이 달라지는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에선 노동자가 1명이라도 죽으면 현장소장은 물론 원청기업의 경영책임자, 중앙행정기관의 장까지 처벌 대상이 된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작업도 진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매년 안전사고로 20명 안팎이 죽는 군에선 중대재해법으로 수사하거나 처벌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마저도 현역병 사망은 예외라고 하니 채 상병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군기훈련 중 훈련병 사망, 수류탄 폭발로 훈련병 사망. 군 안전 전문가들은 “부실한 안전체계의 고름이 터졌다”라고 우려하지만 군은 사실상 안전을 방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는 늘 군이나 경찰, 소방관들에게 어떠한 공무수행 중에도 먼저 자신들 안전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채 상병 사망이 안타깝다면서 한 말이다. 그런데 군인, 경찰관, 소방관 개인들이 자신의 안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할까.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의 철학과 시스템의 부재가 사고를 만드는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중대재해 현장에서 “간단한 실수 하나가 비참한 사고를 초래했다”고 말해 ‘노동자 탓한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채 상병 사망 1년이 돼가는데도 정부는 군 사망사고를 막는 안전대책은 별달리 발표한 게 없다.

이혜리 기자

이혜리 기자

앞서 윤 대통령은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는 청년을 호명했다. ‘천안함 청년 전준영’, ‘K-9 청년 이찬호’를 거론하며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선거 때만 부르짖는 청년 말고, 책임 회피를 위한 격노 말고, 군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폈는지 윤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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