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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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기자

이효상 기자

60대 아버지가 서른아홉 살 장애 아들을 살해한 사건을 취재하면서 류승연 작가의 칼럼을 보게 됐습니다. 류 작가는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는 전직 기자입니다. 그는 칼럼에서 비장애인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을 언급하면서 비극적 사건의 사실관계를 나열할 뿐 심층 분석으로 나아가지 않는 언론의 게으름, 전문성 부족을 지적했습니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일부 정책은 이미 마련돼 있는데 왜 사건이 벌어진 가정에서는 이용하지 않았는지 파고들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꼭 그 지점까지 가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솔직히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제도가 너무 많습니다. 발달장애인만 놓고 봐도 성인 발달장애인이 이용하는 주간활동서비스가 있고, 학생 장애인이 이용하는 방과후활동서비스가 있습니다. 이 밖에 부모교육 지원사업, 가족휴식 지원사업 등 다종다기한 정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오는 6월부터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서비스도 시행됩니다. 각종 수당 관련 제도는 거의 훑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러니 아닌가요. 이렇게 많은 정책이 있는데, 비극은 계속됩니다. 정책이 원활히 작동된다면, 그 아버지는 약간의 휴식이나마 취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보호자가 자녀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알아보고 신청해야 톱니바퀴가 돌아갑니다. 이 정책들을 속속들이 알아본다는 건 기사를 쓰겠다 작정하고 달려든 기자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내일은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치료와 재활·돌봄, 생계에 매달리는 보호자에게는 더없이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신청한다고 서비스를 온전히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배점표 상의 1~2점 차로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니, 장애인 가족은 ‘불행 배틀’의 승자가 돼야 비로소 온전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거친 결론이지만 모두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의 의제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민 모두가 이 일을 자기 일이라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색없던 수습기자 시절에 기삿거리를 가져오라고 하면 무릎반사처럼 장애인 관련 얘기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사회가 돌아봐야 할 명백한 약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장애인의 집회·시위에 민원이 빗발치고, 혐오가 난무합니다. 비극적인 사건을 낱낱이 들추지 않고는 장애복지에 대한 여론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을 도모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직업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잘살고 있는 건지 묻게 됩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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