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소비자 선택권 없는 끼워팔기 요금제로 플랫폼 영향력 전방위 확대
미국·중국 세계 이커머스 격전지로 부상한 한국, 플랫폼법 재논의 시급
국내 1위 전자상거래(이커머스)업체인 쿠팡이 유료 회원제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 요금을 60%가량 인상했다.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쿠팡에서 ‘환승’하려는 소비자를 모시기 위해 전방위 공세에 나섰다.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은 한국에서 무료 직구 배송 행사를 진행했다. 알리나 테무 같은 중국 이커머스 업체처럼 아마존도 한국에 직접 진출할지 관심이 쏠린다.
쿠팡은 총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4월 13일 신규 회원의 멤버십 요금을 월 4990원에서 월 7890원으로 58.1% 인상했다. 회원 대상으로 쿠팡이츠(배달앱) 무료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지 18일 만에 가격을 올려 ‘조삼모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기존 회원은 올해 8월부터 인상이 적용된다. 이제 와우 멤버십 요금은 연간 10만원에 육박해 프리미엄 카드 연회비와 맞먹는 수준이 됐다. 고물가 속 적지 않은 인상폭이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쿠팡 탈퇴 선언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와우 멤버십 가입자는 작년 말 기준 1400만명으로, 한국인 3명 중 1명이 쓰고 있다.
앞서 쿠팡은 2021년 12월 같은 멤버십 요금을 월 2900원에서 4990원으로 72.1% 올렸다. 당시에도 회원 이탈 우려가 있었지만 2년새 회원 수는 900만명에서 1400만명으로 증가했다. 지난달 미국 프로야구 서울 개막전을 쿠팡플레이가 독점 중계하면서 회원 수는 더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쿠팡플레이는 와우 멤버십에 가입하면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다.
■ 쿠팡, 무료배달 선언 후 멤버십 요금 인상
이번 인상으로 쿠팡의 멤버십 요금 수입은 연 8388억원에서 1조326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쿠팡 측은 멤버십 가격을 올려도 ‘압도적인 가성비’는 여전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넷플릭스는 OTT만 제공하는데도 쿠팡보다 두 배가량 비싸다는 것이다. 쿠팡 관계자는 “무료배송, 반품, 직구, OTT, 음식배달 등 5가지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와우 회원은 비회원과 비교해 연평균 97만원(멤버십 월 요금 제외) 상당의 비용 절약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료배송으로 고객을 확보한 쿠팡이 OTT 업체를 경쟁사로 놓고 멤버십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켓 프레시와, 쿠팡이츠 등의 서비스가 되지 않는 지역에 사는 사람과 다양한 서비스를 쓰지 않는 소비자들이 선택할 요금제가 없다는 점에서도 불만이 적지 않다. 맞벌이 부부로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A씨(35)는 “배송비가 상품에 포함돼 가격이 저렴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 급할 때 쓸 수 있는 익일배송 때문에 끊지 못했다”며 “(이번 가격 인상은) 쓰지도 않는 OTT와 배달 서비스를 끼워파는 횡포로 느껴져 다른 곳으로 갈아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가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 이를 무기로 그간의 손해를 가격 인상으로 메우는 플랫폼 업체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쿠팡의 논리라면 멤버십 가격 인상은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어 소비자를 고려한 이원화된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쿠팡은 작년 말 기준 국내 이커머스 시장점유율 24%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공습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실탄을 확보해 (저가 경쟁이 아닌) OTT 등 다양한 서비스가 결합한 고품질 콘텐츠 경쟁을 하겠다는 향후 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격 인상이 적정한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소비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세계 최대 이커머스인 아마존도 지난 4월 17일부터 한국에서 무료 직구 배송 행사를 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아마존은 홈페이지를 통해 총 결제금액이 49달러(약 6만8000원) 이상일 때 적용된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그간 세계시장 판매 촉진을 위해 시장별로 비정기적인 행사를 해왔다. 한국에서도 이전에 비슷한 행사가 있었지만 당시 무료배송 결제 금액 기준은 99달러(13만6000원)였다. 이번에는 이를 절반 가까이 낮춘 셈이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어 아마존의 이번 행보를 한국 진출 사전 작업으로 여기는 시각도 있다.
■네이버 당일·일요배송으로 전면전
쿠팡의 전격적인 가격 인상은 유통·배달앱 시장에 다양한 파장을 일으켰다. SNS 등에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빗발치며 ‘멤버십 환승’ 분위기가 형성되자 이커머스 업체들은 ‘반쿠팡 전선’을 만들어 구독료 인하에 나섰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네이버는 지난 4월 18일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당일·일요배송을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구매자가 오전 11시까지 상품을 주문하면 당일 도착을 보장하고, 토요일에 주문한 상품은 일요일에 받아볼 수 있다. 상품을 제때 받지 못하면 구매자는 네이버페이 포인트 1000원을 받는다. 해당 서비스는 수도권부터 시작해 내년부터 권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5월 31일까지 유료 구독 회원 서비스인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월 4900원)’ 3개월 무료 행사도 한다. 6개월 내 멤버십 가입 이력이 없는 고객이 대상이다.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G마켓은 다음 달 한 달간 통합 멤버십인 ‘신세계 유니버스클럽’ 신규 가입 회원의 연회비를 기존 3만원에서 4900원으로 83.7% 내린다. 유니버스클럽에 한 번도 가입한 적 없는 신규 고객이 대상이다. 행사기간 가입한 고객은 멤버십 1년 무료 연장 혜택을 받으니 사실상 2년간 회비가 4900원인 셈이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도 ‘컬리멤버스’에 신규 가입하는 고객에게 3개월 무료 이용 혜택을 제공하고, 11번가도 SK텔레콤 연계 멤버십인 ‘우주패스 올’의 첫 달 가입비(9900원)를 1000원으로 내린다.
유통업계에서는 쿠팡의 가격 인상으로 가입자들이 얼마나 이탈할지, 이탈한 소비자들이 어느 곳으로 이동할지에 주시하고 있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시기라 당장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등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영향이 미미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쿠팡보다 더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찾지 못하는 한 이탈 회원이 다시 재가입할 가능성이 커 일부가 이탈해도 가격 인상에 따른 수익이 더 클 것”이라며 “회원 중 20%가 나가도 회비 수익만 2220억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런 전망을 반영하듯 뉴욕 증시에선 모기업 쿠팡Inc 주가가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10% 넘게 급등하며 20달러를 넘어섰다. 쿠팡의 주가가 종가 기준 20달러를 돌파한 것은 2022년 10월 6일(21.03달러) 이후 처음이다.
■ 반칙·독점 막는 플랫폼법 논의 재개해야
배달앱 시장에서는 쿠팡이츠가 지난달 ‘배달비 무료’를 선언하며 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번 가격 인상으로 쿠팡이츠가 자금을 확보하면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타사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저가·출혈경쟁을 일으켜 시장의 주도권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쿠팡이츠는 배달의민족, 요기요에 이어 국내 배달앱 시장 3위 플랫폼이었는데, 지난 3월 26일부터 묶음 배달 시 배달비 무료 정책을 내놓으면서 신규 이용자가 폭증했다. 그 결과 3월 쿠팡이츠의 MAU는 625만명으로, 요기요(570만명)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쿠팡이츠의 성장세에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도 유사한 무료배달 서비스를 내놨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할인이 줄고 점주들의 저조한 참여와 서비스 지역 제한 등으로 소비자들의 효용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음식점주는 “앱 노출 등을 감안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앱에 내는) 수수료율이 인상돼 업체마다 최소주문금액을 올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에 비용이 반영돼 장기적으로는 외식 물가가 올라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쿠팡은 OTT 시장에서도 공격적으로 스포츠 중계 콘텐츠를 확장하며 업계 1위인 넷플릭스를 따라붙고 있다. 유통과 OTT, 배달앱으로 연결되는 쿠팡 생태계가 생활에 자리 잡으면서 플랫폼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은희 교수는 “플랫폼 기업이 생태계를 장악하면 쿠팡처럼 가격을 급격하게 올리거나 배달앱들이 수수료 부담액을 마음대로 정해도 대처할 방법이 없다”며 “플랫폼법(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을 만들어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반칙 행위와 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공정위는 거대 플랫폼의 자사 우대와 끼워팔기, 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등을 규제하기 위한 플랫폼법을 추진했으나 업계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하지만 플랫폼 업계의 잇따른 구독료 인상과 중국 업체들의 반칙 영업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어 22대 국회에서 플랫폼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독과점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규제 입법을 주장해왔던 김남근 변호사가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것도 주목을 받고 있다. 경쟁법 전문가인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계나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 수직적인 관계서 발생하는 영세 소상공인에 대한 갑질 금지 등을 위한 보호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며 “플랫폼법과 더불어 소비자 보호를 강제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으로 해외 기업들이 준법 경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