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는 동전의 양면이다. 좋은 관계는 적절한 소통을 통해 만들어지고, 관계가 좋으면 소통이 원활해진다. 그런 점에서 소통은 관계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에서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가족 간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면 소통에 문제는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 관계 맺기가 힘들었다. 상사와의 관계는 물론,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윗사람 앞에 가면 쭈뼛쭈뼛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 상사와 말을 섞을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그렇게 데면데면 소통하니 친해질 리 만무했고, 그럴수록 더 소통이 어려워지고 관계는 소원해졌다. 관계와 소통의 악순환이었다.
동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원만한 듯 보였으나, 겉모습만 그럴 뿐 왠지 불편한 관계였다. 나는 입사가 또래에 비해 2년 늦었고, 우리 부서엔 나와 동갑이지만 2년 먼저 들어온 ‘어색한 선배’ 1명, 나보다 한 살 적지만 1년 먼저 입사한 ‘애매한 선배’ 1명, 여상을 졸업하고 나보다 6개월 먼저 들어왔지만 나이는 예닐곱 살 적은 후배인 듯 선배 같은 동료. 이렇게 사원급이 나를 포함해 4명 있었다.
우선 호칭부터 애매했다. 먼저 들어온 이 세 사람에게 누구 씨라고 부르기도, 누구 선배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호칭을 부를 수 없으니 대화는 최대한 절제됐다. 뿐만 아니라 또래 세 사람은 모두 같은 대학 출신이었고, 상사들에게 늘 비교 대상이었으며, 묘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특히 나보다 6개월 먼저 들어온 여직원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다. 당시는 개인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이 직원이 타자기로 타이핑해주지 않으면 상사에게 서면보고를 할 수 없었는데, 내 보고서는 늘 뒷전이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따뜻하게 대해주다가도 둘만 남으면 얼굴색이 변했다. 내가 공부하고 군대에 다녀오느라 늦게 들어온 것은 그에게 의미 없었다. 나를 선임 직원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니, 내 글을 타이핑해줄 이유도 없었다. 당시 신혼이었던 나는 ‘회사생활 못 하겠다’라며 아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 시절 내 눈에 들어온 게 지하 운전기사 대기실 풍경이었다. 1990년 당시 회사는 부서장 전원에게 차와 운전기사를 제공해줬다. 기사분들은 부서장을 출근시키고, 가끔 나오는 업무 배차만 소화하면 됐다. 기사대기실에는 감독하는 사람도, 눈치 보는 사람도 없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거나, 장기나 바둑을 뒀다. 누가 무엇을 하건 상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호칭이 누구 형이나 아무개로 통일돼 있었고, 서로 존대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불만을 갖거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격의 없는 관계였다. 종신 고용이 보장돼 있고 승진할 일도 없으니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이 방 사람들은 모르는 게 없었다. 회사의 모든 정보가 이 방으로 흘러들어왔다. ‘사장님이 어제 누구와 저녁을 먹었다.’, ‘어느 임원은 누구와 친하다.’ 등. 온갖 뉴스가 모이는 첩보의 저수지, 정보의 허브였다.
나는 소통의 유토피아가 있다면 바로 이 기사대기실 같은 모습이겠구나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조직 책임자가 되면 이런 관계의 낙원을 만들어봐야겠다고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직장생활 내내 내가 경험한 조직 소통은 기사대기실 풍경과는 정반대였다.
소통이 잘 된다는 건 무엇일까. 말과 글이 흐른다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옆으로 잘 흐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직은 이 세 흐름 모두 동맥경화를 겪고 있다. 말과 글이 원활하게 통하지 않음으로써 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니 조직은 효율이 떨어지고 개인은 행복하기 어렵다.
대체 어떤 문제가 있길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가. 첫째, 위에서 아래로 잘 알려주지 않는다. 둘째, 아래에서 위로 말하지 않는다. 셋째, 경쟁 관계에 있는 옆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다. 불통의 원인은 이처럼 단순하다.
그렇다면 해법 또한 간단명료할 수밖에 없다.
첫째, 위에서 아래로 잘 알려주면 된다. 그런데 왜 잘 알려주지 않을까. 알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 자신은 누가 알려줘서 거기까지 올라간 게 아니니까. 아니면 알려줘야 할 자신부터 아는 게 없어서 못 알려줄 수 있다. 알려줄 내용도 있고 알려줄 필요도 느끼지만, 방법이 서툴러서 잘 알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밖에 바빠서 안 알려줄 수도 있고, 아는 것으로 상사 노릇을 하거나 자신과 친한 사람에게만 알려줌으로써 자기 밑에 줄을 세우기 위해 그럴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위에서 잘 알려줘야 한다. 알려주면 일을 잘할 뿐 아니라 위아래 관계도 좋아진다.
둘째, 아래에서 위로 말하면 된다. 말하게 만들려면 위에서 잘 들어줘야 한다. 말해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손해를 봐선 안 된다. 아래 직원의 말을 자꾸 평가하려 해서도 안 된다. 말하면 무조건 이익이다, 어떤 말이건 대접받는다는 인식이 조직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위에서 잘 들어주는 게 필요조건이라면, 충분조건은 아래 직원이 말하는 것이다. 아래 직원 스스로 할 말이 있어야 하고, 말하고 싶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게 가능할까. 공부하면 된다. 공부하면 할 말이 생기고, 말로써 존재감을 드러내고, 소통의 장에 참여하고 싶어진다.
셋째, 옆으로는 경쟁에서 협력 쪽으로 물꼬를 틀어야 한다. 말로 이기려 들거나 편 가르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다른 생각과 입장과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고 공유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간, 부서와 부서 간 장벽을 허물고 말과 글이 자유롭게 넘나들게 해야 한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됐을 때 비로소 소통의 유토피아를 시험할 기회가 왔다. 나는 대통령께서 알려주는 내용을 혼자 듣지 않았다. 행정관들과 함께 가서 들었다. 혼자 들은 경우엔 듣지 못한 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했다. 그러다 보니 나와 행정관들의 아는 수준과 알고 있는 양이 다르지 않았다. 행정관은 언제든 기탄없이 얘기했다. 연설비서관실이 잘 될 수 있도록 의견을 말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통령께서 나를 찾으면 행정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알려주기 바빴다. 행정관들도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 초안이 하나 나오면 모여 앉아 동료의 글을 열과 성을 다해 고쳐줬다. 이를 통해 서로 돕고 서로에게 배웠다. 인사고과도 비서관인 내가 하지 않았다. 모여서 토론했다. 우리는 휴일에도 배우자를 피해 사무실에 모였다. 사무실이 우리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였고, 관계의 낙원이었다.
<강원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