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끝판왕’ 비침습 혈당 측정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Photo by Luke Chesser on Unsplash

Photo by Luke Chesser on Unsplash

어떤 하나의 제품 장르가 대세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그것이 설령 단 한 가지라도 대중이 절실히 원하는 걸 채워줘야 한다. 소비자는 자신이 뭘 절실히 원하는지 실물을 보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한다고도 하지만, 누구라도 너무나 원하는 욕망의 대상도 있다.

건강은 그런 욕망의 대상 중 하나다. 스마트폰은 일상에서 손목시계를 치워버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시 손목에 시계 비슷한 걸 알아서들 차고 있다. 스마트워치. 시계가 손목으로 다시 돌아온 결정적 계기는 헬스케어, 바로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보기 위해 손목에 시계를 차는 것이 아니다. 시계가 손목을 관찰하도록 손목을 내준 것이다.

예전 의관이 맥을 짚기 위해 손목을 잡듯 기계는 우리가 내민 손목을 감싼다. 그리고 맥을 읽는다. 살아 있다는 건 수많은 신호를 뱉어내는 일. 손목에 흐르는 생체 신호 속에는 우리 몸속의 병이 뿜어내는 신호도 섞여 있을 터다.

만보계가 주된 기능이었던 스마트워치는 어느새 심박 수는 물론 심전도, 혈중산소농도까지 파악한다. 정확성에 대한 이견도 있지만, 혈압까지 측정하는 기기도 있다. 혈중산소농도로 수면무호흡증을 예측한다거나, 심방세동 등 심장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알아낼 수 있다. 의료계도 이 생체 신호의 일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다양한 협업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절실한 신호를 읽어 내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관리돼야 할 건강의 척도가 되는 주요한 신호. 하지만 우리는 겨우 1~2년에 한 번 이 수치를 파악한 뒤, 일희일비하다가 곧 잊는다. 이 수치 체크를 놓치면 생명이 위독해지는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노화와 함께 변하는 이 수치의 추이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바로 혈당이다. 식후의 혈당 스파이크에 나른하게 노곤해지는 동안 우리 몸은 상처를 받는다. 내 몸에 맞지 않아 혈당을 춤추게 하는 음식을 아무도 말리지 않으니 마음껏 먹고 몸에 상처를 준다. 누군가가 객관적인 수치로 한마디 해준다면 말릴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도 연속혈당측정(CGM)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바늘이 나를 찌르기에 그 착용도 번잡하고 측정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애플도, 삼성전자도 전자파나 빛을 이용해 피부밑 혈관을 비춰 혈당을 계산해 내는 비침습 혈당 측정 기술을 연구 중이다.

곧 나올 듯 기사가 나오지만, 수년째 어디도 선뜻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그 추이만 파악해도 고맙지만, 수치가 너무 어긋나면 환자에게 위험한 정보가 될 수 있어서다. 어느 회사든 혈압과 혈당을 정복하는 웨어러블을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절대 반지’와 같은 폭발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검진을 시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두 수치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잔소리가 될 수 있어서다.

하루에도 수시로 혈압과 혈당과 운동량으로 잔소리를 할 수 있다면, 대사증후군을 막고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직장인 건강검진을 빼먹으면 과태료가 나오듯이, 혈압·혈당·운동용 스마트워치를 노동자가 차지 않으면 과태료를 매기는 그런 미래가 올 수도 있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

IT 칼럼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