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인맥 관리 ‘노하우’ 5가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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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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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나 이권을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주겠다.” 제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노무현 당선자의 일성이다. 나는 이 말을 인수위원회 파견 근무할 때 직접 들었다. 당선자는 “여러분이 로비를 받으면 정면으로 그 사람에게 경고하고, 그 정보를 하나하나 제게 보내 달라”고 주문했다. 그에게 인사 청탁이 왜 이리도 중요한 문제였을까.

부패 문제 권위자인 미국의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부패의 신드롬>이란 책에서 국가의 부패 유형을 ‘독재형’, ‘족벌형’, ‘엘리트 카르텔형’, ‘시장 로비형’으로 나눴다. 한국은 ‘엘리트 카르텔형’ 국가로 분류하고 정치인과 고위관료, 대기업 임원과 언론인 등이 학연·지연으로 뭉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라고 정의했다. 수긍이 가는 진단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법특혜, 부정부패, 뇌물공여 뒤에는 반드시 연줄이란 인맥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맥’은 주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그럼에도 인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사회는 노하우가 아닌 누구를 아느냐, 즉 노 후(Know Who)의 시대라고 한다. 한 발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고, 인적 네트워크가 핵심 자산이 되는 시대인 건 틀림없다. 날로 비중이 커지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적 관계망을 통한 가상의 관계를 감안해볼 때 더욱 그렇다.

나처럼 직장을 나온 사람에겐 인적 자산이 더욱 절실하다. 나를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팔려면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책을 살 때, 내용보다는 책을 쓴 사람을 보고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강연도 비슷하다. 내용을 들으러 오기보다는 강연자를 만나기 위해 온다. 내가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가 나를 얼마나 아느냐가 중요해졌다. 아니, 아는 사람 수도 중요하지 않다. 절대적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 양보다 질이다. 인맥은 숫자가 아니다. ‘팬덤’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다.

인맥 관리에 열심인데, 실속은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먼저, 명함 관리에 정성을 다한다. 나는 이런 분에게 묻고 싶다. 책상 정리 잘하고 필기 열심히 한다고 시험 잘 칠 수 있는지. 진짜 인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명함은 갖고 있지 않는 법이다.

만나면 ‘출신’부터 묻는 사람도 있다.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심지어 본(本)이 어디냐고까지 묻는다. 어떻게든 지연·학연·혈연으로 엮어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영업하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학연·지연·혈연부터 찾는 사람치고, 실적이 좋은 경우가 있는가.

송년이나 신년, 명절에 단체문자 마구 보내는 분들이 있다. 이런 의례적 인사치레는 인맥 관리에 도움이 안 된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그렇지 않다. 안 하는 게 낫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사귐에 내실을 기하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고 애를 쓴다. 그러니 폭탄 문자를 보내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런 분에게 외부 인맥보다는 내부 인맥을 공고히 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사마다 쫓아다니고, 각종 모임에 얼굴 내미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게 사람 속성이다. 마당발이란 소리를 들으며 고루 넓게 사귀기보다는, 좁고 깊게 사귀는 게 맞다. 내가 누구를 아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나를 아느냐가 중요하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다 했어 인마.”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유명한 대사다. ‘내가 누구를 알고, 누구와 같이 밥도 먹었고’ 하는 사람일수록, 상대방은 그를 모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고, 이 사람 저 사람 눈도장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괜한 일이다. 지속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에너지만 낭비하는 꼴이다. 땅만 넓히면 뭐하나. 넓혀진 땅 위에 뭔가를 심고 가꿔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만난 사람의 수가 아니라 만남의 빈도가 중요하다. 열 사람을 한 번씩 만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을 열 번 만나는 게 더 실익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맥 관리의 첫째 조건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시간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해야 한다.

둘째,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평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 묵례로라도 인사를 잘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주기적으로 안부 인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회의할 때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사람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뜬금없이 연락해보는 것도 좋다.

약속을 잘 지키고, 인사를 잘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인맥의 씨를 뿌리는 일이다. 인맥 관리는 장사가 아니라 농사다. 주고받는 거래로 접근하면 실패한다. 먼저 씨를 뿌리고 나중에 거둬야 한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확신을 갖고 열심히 씨를 뿌리면 반드시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다. 그에 반해 활용하려고 모은 인맥은 정작 써야 할 때 쓰지 못한다. 언젠가 써먹어야지 하는 생각 없이 모아둔 인맥이 결국 요긴하게 쓰인다.

넷째, 사람을 장점 중심으로 봐야 한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장점이 없는 사람도 없다. 칭찬하고 평가해주면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다섯째,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사람 모두다. 그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면 그 사람 뒤에 있는 사람과도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소중하다.

끝으로, 누군가에게 줄 게 있어야 한다. 타고난 친화력만으로 인맥 관리가 되는 건 아니다. 인적 네트워크는 상호 이익을 전제로 한다. 왜 상대가 나와 가깝게 지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식이든 정보든, 재미든 위로든, 깨달음이든 웃음이든. 주는 게 있는 사람에게 모이게 돼 있다.

흔히 성공한 이유를 물어보면 “제가 인복이 많아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도와준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인복(人福)’은 거저 들어오지 않는다. 인복은 자신이 불러들인 복이다. 사람들은 인복이 있는 사람에게 붙을 만해서 붙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맥 관리는 나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맥은 없었지만 인복이 있던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봉화산 같은 존재다. 봉화산은 산맥에 속해 있지 않다. 벌판에 불쑥 솟아 있다.” 그는 외로웠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됐을 때, 정치하는 내내 늘 아웃사이더였다. 인맥의 최대 피해자였다. 하지만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그를 사람들은 가만 놔두지 않았다. ‘노사모’라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그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대통령이 됐다. 결국 인적 네트워크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인맥이 없다고? 인복이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자.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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