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경쟁’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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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고통 경쟁’을 멈춰야 한다

2019년 1월 4일, 국방부는 돌연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로 일컫겠다고 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 대체복무를 규정한 ‘대체역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한 터였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자, 정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했다. 그런데 ‘그럼 군대에 간 사람은 비양심적이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정부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용어 변경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저 비판은 양심을 단순히 ‘선량하다’, ‘올바르다’로 오인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헌재와 대법원은 양심을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도덕적 마음가짐’으로 정의한다.

국방부도 이런 양심의 정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와 정부 내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한 이들의 민심 이반을 의식해 용어 변경을 결정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정부가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 보장을 위해 시민들을 설득하기보다 여론에 편승하면서 문제해결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국민 정서 등을 거론하며 현역과의 ‘형평성’을 강조한다. 잘 들여다보면, 이 형평성의 기준은 바로 ‘고통’이다. 현역이 이렇게 고통스러우니 대체복무도 그만큼 혹은 더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생산적인 논의가 발 디딜 틈이 없다. 대체역심사위원회 위원을 지낸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는 이를 “고통을 줄 세우는 방식”이라며 “현역의 군 생활을 기준으로 고통을 경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역의 인권과 처우는 그것대로 개선하고, 대체복무는 징벌성을 제거해 민간 영역에서 이뤄지게 하면 된다.

무엇보다 교정시설로 한정된 복무 분야 확대가 시급해 보인다. 헌재도 복지, 소방, 의료, 방재 등 분야에서 대체복무를 하면 공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민들이 대체복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그러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다. 사법부와 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는데도, ‘병역기피자’로 여기는 시민이 많은 게 현실이다. “대체복무 운용은 그간 사회적 낙인과 법적 처벌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식개선과 명예회복에 바탕을 둬야 한다”(강인화 대체역심사위원회 위원)는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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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