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고래가그랬어’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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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그랬어’ 237호 표지 / 고래가그랬어 홈페이지 갈무리

‘고래가그랬어’ 237호 표지 / 고래가그랬어 홈페이지 갈무리

두 번에 걸쳐 교양 교육의 개념적 측면을 살폈으니, 현실에서 실천을 이야기해보자. 필자가 발행인을 맡은 ‘고래가그랬어’를 한 사례로 놓을 수 있겠다. 2003년 이 잡지가 ‘어린이 교양지’를 표방하며 창간하자 질문이 이어졌다. 하나씩 답을 하다가 정리된 답변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음 내용을 ‘고래가그랬어’ 맨 앞에 싣고 있다.

“고그(독자들이 붙인 ‘고래가그랬어’의 애칭)가 생각하는 교양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에요. 교양은 나를 삶의 주인으로 만들고 내가 살아갈 세상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죠.”

교양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일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하나일 때 성립하지만, 어린이는 아직 더 나은 세상 만들기의 온전한 책임이 없다. 어린이의 일은 더 나은 세상 만들기를 해낼 수 있는 교양인으로의 성장이다. ‘고래가그랬어’는 그걸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라 요약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뼈대는 사회적 분별력이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눈앞에 보이는 현상으로만 보고 반응하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노예다. 현재 한국사회만 보더라도 특정 정치인이나 엘리트에게 제 운명을 의탁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선악 구도나 진영 논리에 충직한 ‘자유로운 시민’이 적지 않다.

인생의 목표는 일률적일 수 없지만, 교육의 맥락이라면 ‘자기실현’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타고난 자질을 최대한 키우고 유일한 개성으로 가꾸어 가는 일이다. 자본주의 교의는 자기실현이 타자와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각 개인이 그렇게 할 때 개인의 합으로서 공동체도 최선의 발전을 이룬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은 어른 식으로(개념적으로) 표현하면 ‘사유와 연대’쯤일 것이다. 현재 한국 아이들은 그와 거의 상반된 ‘계산과 경쟁’을 교육받고 있다. 이것은 그저 자본주의 교의에 충실한 거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거의 모든 아이가 이렇게 ‘호모이코노미쿠스’로 교육받는 사회는 자본주의 역사에 없다.

자본주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사회들은 왜 여전히 교육에서 자본주의 교의를 전면화하지 않을까. 자기실현의 이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견제하기 때문이다. 자기실현은 물론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자기실현이란 타자와 경쟁의 상대적 결과가 아니라 고유하고 절대적인 성취다.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 연대는 경쟁을 회피해 손해를 감수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실현의 동력이다.

물론 오늘 자본주의 현실은 엄혹하다. 경쟁과 물신숭배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사회는 교육에 관한 두 가지 견해가 갈등하는 상태에 있다. 하나는 현실이 그러하니 교육도 그렇게 가는 게 최선이라는 견해, 또 하나는 자기실현의 이치를 교육에서조차 포기하면 공동체는 최종적 위기를 맞는다는 견해다.

한국은 전자에 올인한 거의 유일한 사회다. 한국 교육이 갈등을 지우고 호모이코노미쿠스 교육을 완성한 결과는 무엇인가. 교육의 의미와 기쁨, 아이를 키우는 의미와 기쁨이 사라졌다. 그에 따라 아이를 낳을 이유가 사라졌다. 한국의 기록적인 출생률은 흔히 말하듯 단지 경제(돈) 문제인가. 그걸 경제 문제로만 보는 사회와 교양의 문제인가.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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