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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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이번에도···미안합니다

알록달록 뒤덮인 포스트잇은 죽음의 흔적을, 혼자 전전긍긍해야 했던 누군가의 무력함을 한겹 한겹 감싸 안고 있다.

지난 9월 14일 여성 역무원 A씨가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을 순찰하다가 전주환(31)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씨는 피해자 A씨의 고소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돼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상태였다.

경찰은 처음 A씨가 고소한 사건을 수사할 당시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그후 한 달간 피해자가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등록된 것 외에 추후 조치는 없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바꾸기 위해 멈추지 않겠습니다”,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싸우겠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신당역에는 시민의 추모 발길과 연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9월 30일까지 역사 내 추모공간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글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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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