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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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경영진이 고령 노동자들을 퇴출하는 방법을 논의하며 그들을 ‘멸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달 각종 소송을 둘러싼 법원 문서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IBM은 구설에 올랐다. 경영진은 나이 든 직원들을 ‘다이노베이비’라고 지칭했다. 아기공룡이라니 1990년대에 방영된 어린이 만화를 뜻하는 것인지, 마텔사의 장난감 시리즈를 뜻하는 것인지, 요즘 NFT아트로 장당 3000달러까지 가격이 오른 그림 시리즈를 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롱마저 쿨하게 해보려 애쓴다 싶다.

광고판에 IBM 클라우드 서비스의 로고가 붙어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광고판에 IBM 클라우드 서비스의 로고가 붙어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IBM이 “오래된 허접한 조직”으로 보여 인재 채용 문제에 직면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멋지고 트렌디한 조직”으로 보이고 싶었다는 거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으로 변모하고 싶었던, 그러니까 디지털 전환이 시급한 기업 입장에서 고인 물을 흘려보내 변화를 가속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생각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온다. 일본에서 총리 자문을 할 정도로 영향력 있던 산토리 홀딩스의 사장은 45세 정년제 도입 이야기를 꺼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직원이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야 회사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는 논리였다. 기업은 원래 아무리 과거에 공을 세운 직원이라도 달라져 버린 내일에 필요하지 않다면 부담을 느낀다. 그런 변화는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 IBM의 베테랑들도 힘들어하는 디지털 전환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류사의 상당 기간 나이가 드는 일이란 마을의 장로로 생존의 지혜를 나누고 젊은이들이 생산력을 발휘하도록 정서적 양육 같은 후방 업무를 맡는 중요한 삶의 과정이었다. 이제 삶의 지혜 따위는 검색할 수 있다. 취향도 달라 어른의 손맛보다 유튜브의 레시피가 더 맛있다. 개인화와 핵가족화가 불러온 현대적 변화에 디지털은 쐐기를 박고 있다. 우리는 노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팬데믹은 함께 살며 교류하는 일의 빈도마저 낮추면서 세대 간 단절을 고착화한다.

디지털이 각자가 지닌 가치를 세대 너머의 불특정 다수에게 전승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게 해주리라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박막례 할머니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끔 주위 어르신들의 단톡방이나 유튜브의 추천 영상을 살펴보자. 아마도 놀랄 것이다. 디지털은 사회통합보다 단절에 요긴한 도구가 되고 있다. 메타버스가 만들어진다면 그곳은 아마 더할 것이다.

그 결과인지 노인혐오는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다. ‘틀딱’이니 ‘꼰대’니 이제 중년 혐오로까지 이어질 기세다. 모두 불안하니 마음을 닫고 공격적이 된다. 모르는 일을 겸허히 배우려는 열린 마음 대신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경향이 퍼진다. “내가 모르는 건 너의 책임이니 쉽게 말해라”는 듯한 태도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 타자의 지혜란 검색하면 된다며 귀를 닫고, 정작 검색도 하지 않는다면 끼리끼리의 편향에 갇히고 만다. 남는 건 퇴보뿐이다. 그렇게 쌓인 답답함과 불안, 절망은 배출구를 찾는다. 지난해 1분기 전체 피의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처음으로 두 자릿수(10.0%)를 기록했다. 노령화 속도보다 빠르다. ‘법원통계월보’를 보면 2013년(1만3339건)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촉법소년 범죄 건수가 2019년 다시 1만건 이상으로 올라선 뒤 3년째 비슷한 수준이다. 확실한 증가세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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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