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Cyrano)-시라노의 짝사랑, 뮤지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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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동안 단순히 ‘큰 코’로만 특정해오던 주인공의 외모를 왜소인이라는 좀더 극단적인 형태로 강화함으로써 인물이 갖는 열등감과 비애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주연을 맡은 피터 딘클리지의 호연과 존재감 덕이다.

제목 시라노(Cyrano)

제작연도 2021

제작국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

상영시간 124분

장르 뮤지컬, 드라마

감독 조 라이트

출연 피터 딘클리지, 헤일리 베넷, 켈빈 해리슨 주니어

개봉 2022년 2월 23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유니버설 픽쳐스

유니버설 픽쳐스

시라노(Savinien Cyrano de Bergerac·1619~1655)는 17세기 프랑스에 실존했던 군인이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문무에 다재다능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비정상적으로 큰 코의 특이한 외모를 가졌다. 융통성 없는 성격 탓에 주변에 적이 많았고, 결국 한창나이에 피살당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정작 그의 이름을 후세에 널리 알린 건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쓴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덕분이다. 위의 실존 인물에게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5막으로 구성한 운문(韻文) 희곡으로 1897년 파리의 폴드 상마르탕 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후대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다.

타고난 무예 실력과 문학적 소양을 가진 군인 시라노(피터 딘클리지 분)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아름다운 여인 록산(헤일리 베넷 분)을 흠모하지만 자신감 없는 외모 때문에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돈다. 어느 날 록산은 평소 끈질긴 구애를 보내던 드 기슈 백작과 극장 나들이를 나섰다가 잘생긴 신병 크리스티앙(켈빈 해리슨 주니어 분)과 마주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크리스티앙은 록산의 기대와 달리 그리 명석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들 사이의 감정을 눈치챈 시라노는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대필하기에 이른다.

시대극 달인의 첫 번째 뮤지컬

남다른 외모로 열등감을 가진 주인공이 오랜 시간 연모해온 아름다운 여인에게 대필편지를 통해서나마 마음을 전달한다는 애잔한 내용은 시대를 초월해 가슴 아픈 짝사랑의 대명사가 됐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을, 더구나 이미 여러 번 영상화한 작품을 다시 영화로 만든다는 건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공개하는 <시라노> 역시 지금의 관객들에게 소구하면서도 과거 선배작품들의 성취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역력하게 읽힌다.

연출을 맡은 조 라이트는 <오만과 편견>(2006), <어톤먼트>(2007), <안나 카레니나>(2013) 등의 작품을 통해 시대극과 멜로 장르에 탁월한 재능을 입증한 인물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 <한나>(2011)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덩케르크 작전을 결단했던 윈스턴 처칠의 실화를 극화한 <다키스트 아워>(2017), 지난해 넷플릭스가 공개한 <우먼 인 윈도> 같은 스릴러도 있지만, 작품 대부분이 여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보인다.

<시라노>를 새롭게 창조하는 데 한계를 느낀 조 라이트는 에리카 슈미트가 각색한 뮤지컬 버전을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실제로 단순하지만 감미로운 멜로디와 가사는 작품 속에 담긴 순애보와 진정성의 가치를 한층 깊이 있게 전달한다. 마치 현대무용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군무나 촬영과 동시에 라이브로 녹음한 배우들의 노래도 이전에 보았던 뮤지컬들과는 다른 정서를 제공한다.

신체적 한계 뛰어넘은 출중한 배우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건 그동안 단순히 ‘큰 코’로만 특정해오던 주인공의 외모를 왜소인이라는 좀더 극단적인 형태로 강화함으로써 인물이 갖는 열등감과 비애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주연을 맡은 피터 딘클리지의 호연과 존재감 덕이다.

1969년 미국 뉴저지 모리스타운에서 태어난 그는 1995년 톰 디칠로 감독의 <망각의 삶>을 통해 정식으로 데뷔한다. 조연과 목소리 연기 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내면서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는 80여편의 작품에 이름을 올린 대배우로 성장했다. 특히 <스테이션 에이전트>(2003), <피트 스몰스 이즈 데드>(2010), <리메모리: 기억추출>(2017), <아이 씽크 위아 얼론 나우>(2018) 등의 작품은 주연 자리에 이름을 올려 그의 연기력이 흥행성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TV시리즈 <왕좌의 게임>의 티리온 라니스터 역으로 익숙하다. 이를 통해 에미상을 4번이나 수상하고 골든 글로브, 미국 배우 조합상 등을 받았다.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에리카 슈미트와 부부관계이기도 한 그는 특히 중후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이번 영화에선 다수의 노래를 직접 불렀다.

시라노와 그의 후손들


www.kinopoisk.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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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는 1897년 연극으로 초연한 이후 영상으로도 끊임없이 만들었다.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00년에 만든 2분짜리 단편영화다. 사진작가인 클레망 모리스가 연출한 이 작품은 짧은 검투 장면만을 재연한다.

1950년 마이클 고든이 감독하고 호세 페레가 주연을 맡은 작품을 대표적 고전으로 꼽는다. 프레드 쉐피시 감독이 1987년 연출한 <록산느>는 비극적 짝사랑의 무대를 현대로 옮겨온다. 휴양지로 유명한 평화로운 마을의 소방서장으로 근무하는 베일즈(스티브 마틴 분)는 휴가를 온 미모의 여인 록산느(대릴 한나 분)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지만, 미국 코미디 영화 특유의 가벼움과 행복한 결말로 차별성을 둔다.

<시라노> 영화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은 역시 장 폴 라프노가 연출하고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주연을 맡은 1990년 작일 것이다. 웅장한 무대와 화려한 의상 등 볼거리도 다채롭지만, 원작 희곡을 최대한 존중하고 운율을 살린 시적인 대사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란 찬사를 받는 프랑스어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실감케 한다.

지난해 여름 일부 OTT 서비스를 통해 국내에 공개한 <시라노, 마이 러브>(2018)는 18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시라노>를 창작하는 과정을 뒤쫓는다. 재능은 있지만 흥행성이 부족한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소개받은 친구의 애인한테 연정을 품는다. 하지만 이미 유부남이기에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는 뜻밖에도 새로운 창작의 열정이 된다. 실존인물과 역사적 배경을 담보로 하고 있지만,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시라노>의 기본 플롯을 활용한 또 하나의 각색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옳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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