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증명한 수학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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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대학 수준의 수학문제를 풀 수 있다는 인공지능이 구현돼 관련 업계에서 정초의 화제로 떠올랐다. 미적분은 물론 확률통계·선형대수까지 어지간한 문제를 다 풀 뿐만 아니라 아예 출제도 할 수 있었다. 문제 출제란 고급 수학 과정에 이를수록 복잡한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셈이다. 기계의 출제가 어찌나 그럴듯한지 학생들도 속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고급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은 현재 인공지능 연구의 대세로 군림 중인 신경망으로는 힘들다고 여겨져 왔다. 이번 구현을 발표한 논문은 이 사실을 재확인하며 시작한다.

Photo by Thomas T on Unsplash

Photo by Thomas T on Unsplash

수학을 힘들어하는 마음, 이해가 간다. 전국의 수많은 ‘수포자’들이 어떤 기분인지도 잘 안다. 문제를 읽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하얘지는 바로 그 기분. 기계 번역처럼 입력과 출력의 쌍을, 툭 치면 나올 때까지 반복 암기해 길들이는 신경망으로는 수학문제를 풀 수 없다. 요령을 모르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다고 수학 성적이 오르지 않듯이….

실은 대학입시나 학부 수준의 수학에는 요령이 있다. 그 수준의 수학이란 문제의 지문을 읽고 이 문제가 어떠한 학습 요소로 이뤄져 있는지 분해하는 일, 그리고 그렇게 낱낱이 나눈 요소에 필요한 연산을 실수 없이 수행하는 일. 이 두가지가 전부다. 그 학습 요소들이란 간단한 공식일 수도 있고, 그들의 조합이기도 하고, 짓궂게 단원을 섞어놓기도 한다. 아무리 어려운 본고사라고 하더라도 기출문제와 문제은행 모음에서 함부로 벗어날 수 없는 일이니, 결국은 반복되는 학습 요소들의 조합일 뿐이다. 학습 요소는 교과서로 상징되는 출제 범위 안으로 국한되기 때문에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다”는 전설도 허풍이 아닐 수 있다. 이처럼 수학시험의 관건은 어떠한 지문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외워둔 학습 요소로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일에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마찬가지다. 이미 방대한 오픈소스를 학습한, 실은 암기한 코덱스(Codex)라는 거대 인공지능이 이번 구현의 배후에 있다. 여기에서 차별점은 이 코덱스가 이해하기 쉽도록 지문을 다시 한 번 더 고쳐 말해주는 데 있었다. 친절하게 지문을 풀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입력해주면 이 코덱스가 파이썬의 수학 모듈을 활용한 코드로 출력해 준다. 미리 암기하고 있던 것들이다. 코덱스는 깃허브(소셜코딩을 가능하게 하는 웹호스팅 서비스)의 코파일럿 기능으로 보통의 코드 편집기에서도 체험해볼 수 있다. 코덱스 자신이 외워둔 패턴을 사용자가 짜려고 하면 옆에서 나대고 참견하며 대신 짜준다. 패턴은 외운 만큼 인식된다.

이처럼 문제에 숨은 패턴을 인식할 줄 알면 수포자를 피할 수 있다. 필요한 패턴의 수는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니, 이를 암기했다면 그다음은 해(解)를 도출하기 위한 실수 없는 연산력의 몫이다. 수학시험은 그것이 전부다. 어학이 결국 어휘의 암기이듯, 수학도 패턴의 암기라는 걸 이 인공지능은 증명하고 있다. 컴퓨터의 연산 능력은 초당 수억회. 한 치의 오류도 없을 것이다. 어떠한 문제를 던져도 만점을 받은 이 AI. 계산에 실수가 있을 리 없는 기계가 패턴까지 외우고 있었다니….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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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