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 세상, 더 자유로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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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첨단의 세상, 더 자유로워졌을까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재런 러니어 지음·노승영 옮김 열린책들·2만5000원

“만일 모든 도구가 우리의 명령을 받거나 우리의 뜻을 미리 알아차리고 제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면, 그리고 다이달로스가 제작했다는 입상들이나 또는 ‘저절로 신들의 회의장으로 갔다’고 말하는 헤파이스토스의 세발솥들처럼 베틀의 북이 저절로 천을 짜고 픽이 저절로 리라를 뜯는다면, 장인에게는 조수가 필요없고 주인에게는 노예가 필요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나온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상상한 첨단기술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우리 시대의 기술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가 실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고 묻는다.

오늘날 정보기술의 발달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상상과 달리 일면 인간의 자유를 축소시켰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코닥은 전성기에 14만명의 직원을 둔 필름 회사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파산했다. 오늘날 코닥을 대신하는 건 364명의 직원을 둔 인스타그램이다. 14만명의 중산층을 지탱하던 일자리가 한꺼번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이는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데이터 거래가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IT 전문가이자 철학자, 영화감독, 작곡가, 시각 예술가 등으로 활동 중인 지은이는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 ‘세이렌 서버’가 있다고 말한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네이버, 다음 등이 대표적인 세이렌 서버다. 세이렌 서버는 이용자들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네트워크에서 수집하고 그 이윤은 독점한다. 예컨대 뛰어난 구글 번역은 수많은 사람들이 입력한 번역 예문을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의 결과다. 그러나 수익을 얻는 것은 구글일 뿐, 데이터의 주인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지은이는 기여한 정보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경제를 제안한다. 개개인의 정보 기여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한 양방향 링크, 소액 전자 지불시스템 등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하더라도 사람들이 자유를 잃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미래이다”라고 말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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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