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먹었다고 서민 삶 이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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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호떡 먹었다고 서민 삶 이해할까

음식이 정치다
송영애 지음·채륜서·1만5000원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꼭 하는 게 있다. 서민 코스프레다. 재래시장 골목을 누비며 그들이 생각하는 서민들의 음식을 먹는다. 친근감을 자극하면서 정치인이 서민들의 삶을 잘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광고였다. 밤 늦은 시간 일꾼 차림으로 재래시장 순대국집을 찾아 순대국을 먹는 이명박 후보에게 주인 할머니는 “밥 처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 잉? 알겄냐”라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여명의 사복 경호원을 대동하고 가끔 재래시장을 찾아 거리에서 파는 꼬치어묵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 취임 이후 민생탐방을 하겠다며 가락동 시장을 찾아 야채상을 하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직접 둘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음식으로 ‘서민’들의 삶을 연출했지만, 정치는 ‘서민’들의 편이 아니었다.

책은 정치인들의 ‘서민 음식 먹기’를 이야기하면서 “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몇 조각에 와인 한두 잔 마셨다고 서민이 상류층이 될 수 없듯, 고위 정치인이 재래시장에서 파는 족발이나 호떡 몇 입 먹었다고 당장 서민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라고 말한다.

<음식이 정치다>는 음식과 정치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제시하며 음식에 담겨 있는 정치적 의미에 주목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식사정치’를 자주해 온 대통령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여당은 물론 야당 지도부까지 청와대로 초청해서 식사를 함께한 바 있다.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하고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오찬이나 만찬을 열었다고 한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한 지 일주일 조금 지난 2015년 7월 16일 당·청 간 소통을 위해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청와대를 방문했다. ‘화기애애’했던 티타임을 마치고 김무성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은 20분간 독대를 했다. 끝난 시각은 11시50분. 공식 오찬 일정이 없었음에도 밥이나 드시고 가라는 말을 박 대통령은 끝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겉으로는 분위기 좋았던 당·청 간의 만남이었지만, 식사를 함께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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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