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4대강 강천보… 과학을 정치로 오염시킨 애물덩어리 건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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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시 대덕산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은 강원 정선에서 송천과 합류하고, 영월에서 평창강, 충북 단양에서 도담삼봉을 이루다 충주에서 달천을 만나 강폭을 키운다. 남한강물은 횡성·충주·괴산댐을 지나지만 북한강에 비해 평지가 많아 비교적 ‘편안한’ 여행을 했다.

남한강은 경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루며 드디어 수도 서울 한복판을 유유히 관통한다. 한강은 막바지에 동북쪽에서 내려오는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가면서 소멸된다. 그동안 강 주변 마을과 서울시민에게 먹을 물을 주고, 농작물을 자라게 하고, 또 물자를 수송하던 강의 역할이 비로소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편안’했던 남한강물 여정의 막바지에 의외의 장벽이 생겨났다. 여주에만 강천보·여주보·이포보 등 ‘정체 모를’ 보가 3개나 연달아 생긴 것이다.

11월 중순. 조용하던 여주 신륵사 옆 남한강가에 세워진 강천보에서는 발전기 소리가 요란하다. 수력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워낙 가물었지만 한 이틀 비가 내린 덕에 물이 보를 넘치고 있다. 이곳 강천보 수력발전소에서는 연평균 약 29GWh의 전력이 생산되고 있다. 이곳 발전소 설명으로는 30평대 아파트 약 62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적지 않은 양이다.

우리가 알기에 홍수에 대비해 용수를 저장하고 수력발전 기능을 가진 하천 구조물을 ‘다목적 댐’이라고 부른다. 이런 기준에서 강천보는 다목적 댐이다. 한국수자원공사도 4대강 공사를 ‘중소규모 다목적 댐 건설’이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실제 국제댐협회(ICOLD) 기준에서도 강천보는 댐으로 분류된다. 그런데도 정부(이명박 정부)는 ‘댐이 아니라 보’라고 강변했다. 4대강 본류에 댐을 건설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였던 것이다.

한강 상류 여주에 설치된 강천보 아래에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에서 한 사람이 자전거라이딩을 하고 있다.

한강 상류 여주에 설치된 강천보 아래에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에서 한 사람이 자전거라이딩을 하고 있다.

MB정부만 ‘보’라고 강변한 다목적댐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개발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이명박(MB) 대통령은 유독 대규모 토목공사에 집착했다. 그것은 권력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대규모 토목공사의 유혹 때문이기도 했다. 2008년 2월 MB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는 국정과제의 하나로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선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로부터 한반도 대운하는 환경파괴는 물론, 사업적 타당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바꾸어 추진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총사업비 22조원을 들여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과 섬진강 지류에 보 16개와 중·소규모 다목적댐 5개를 만드는 사업이다. MB가 회고록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단일 공사로는 건국 이래 최대의 역사”라고 할 만큼 공사규모가 컸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부족한 수자원을 확보하고, 홍수를 예방하며, 수질을 개선하고, 강 주변에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지역발전을 꾀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 여기에 2008년 닥친 세계 경제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경기부양과 일자리 확충도 사업을 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 많은 하천·환경 전문가들은 환경파괴와 예산낭비를 이유로 반대에 나섰다. 심지어 여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많았다. 여당(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조차 “토목사업 경기부양은 효과가 일시적이고, 좋은 일자리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MB 정부는 이런 지적을 모두 일축했다. 그 이유에 대해 MB는 회고록에서 “금융위기로 경제 살리기가 시급한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할 여력이 없었다”고 기록했다.(이명박, <대통령의 시간>, 2015) 경제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주변의 지적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MB 정부는 2009년 2월 ‘4대강 살리기 기획단’ 설립, 6월 프로젝트 마스터플랜 확정, 7월 본격 착공, 9월 사업자 선정을 거쳐 2013년 초 4대강 공사를 완료했다. 22조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된 공사가 불과 4년이라는 초스피드로 완공된 것이다. 임기 중인 4년 만에 완공한다는 이유로 예비 타당성조사, 환경영향평가 등 대규모 사업 추진을 위한 행정절차를 생략했고, 공사 입찰 및 감리 절차도 대충 넘어갔다.

드디어 2011년 10월 22일 성대한 4대강 완공식이 열렸다. MB가 참석하고 연예인이 대거 동원된 완공식은 KBS가 생중계했다. 완공식에만 수십억원의 예산이 사용됐다. 그리고 4대강 사업 유공자 수십명에게 훈장을 주고, 한강 강천보 옆에는 공원을 만들어 관련자 이름을 새긴 기념비까지 세웠다. 또 전국 4대강에 사업을 홍보하는 거대한 문화관을 짓고, 대구 칠곡보와 강정 고령보 사이에 4대강의 모든 것을 담은 ‘디아크’라는 건축물을 세웠다. ‘디아크’는 웅장한 파노라마 아이맥스 영상과 최첨단 전시실을 갖춘 물과 관련한 종합 예술공간이다.

4대강 살리기 첫 공사지인 경북 낙동강 안동 2지구 착공식이 열린 2008년 12월 29일 안동시 운흥동 영호대교 둔치에서 착공 기념 폭죽이 터지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4대강 살리기 첫 공사지인 경북 낙동강 안동 2지구 착공식이 열린 2008년 12월 29일 안동시 운흥동 영호대교 둔치에서 착공 기념 폭죽이 터지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강천보 옆에 들어선 한강문화관만 해도 첨단 멀티스크린과 다양한 체험시설이 들어서 있다. 직원 10명가량이 근무하는 작지 않은 문화관이지만 방문객은 뜸하다. 이곳 관계자는 “하루 300~400명이 문화관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이곳 한강문화관에는 평판 디스플레이에 손을 대면 많은 물이 번져나가는 ‘소통의 강’이 전시돼 있다. 숱한 조언과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한 4대강 사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변 주변에는 자전거 도로를 시원스럽게 뚫어놨다. 강천보 옆 여강길은 서울에서 경기와 충청을 지나 저 멀리 낙동강까지 이어지는 전국 일주 자전거길이다. 한강문화관을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바로 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보 중간에 생태수변공원과 오토캠핑장, 각종 스포츠 공원이 들어서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MB 정부 말기인 2013년 1월 감사원이 전격적으로 펴 낸 ‘4대강 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과 수질 관리 실태’라는 감사 결과를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 4대강 사업의 내막을 보면 총체적 부실 덩어리였던 것이다. 감사원은 앞서 2011년 초 4대강에 대한 1차 감사에서 “공사비 낭비와 무리한 공기단축 외에 전반적으론 홍수 예방과 가뭄 극복 등에 4대강 사업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었다. 그러나 2년 만에 다시 내놓은 감사보고서는 전혀 딴판이었다. 여론은 ‘감사원이 4대강 책임을 면하기 위해 내놓은 감사보고서’라는 평가지만 그래도 헌법기관의 감사보고서라는 점에서 믿을 수밖에 없다.

감사원은 이 감사보고서에서 설계부실로 보의 내구성 부족, 불합리한 수질관리로 수질 악화, 비효율적인 준설계획으로 과다한 유지·관리비용 소요 등을 지적했다. 아울러 보강공사와 수질개선 대책 및 합리적 준설방안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사 입찰과정에서 건설사의 담합 등을 지적했다. 4대강 사업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 등은 이 감사보고서를 반박하면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4대강의 ‘재앙’은 우리 앞에 현실로 닥쳤다. 유속이 느려진 강은 수질이 악화돼 외래종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고, 여름철이면 녹조가 번창해 ‘녹조라떼’라는 오명을 얻었다. 농로로 이어지는 수로가 없어 가뭄에도 물을 사용할 수 없는 그림만의 호수임이 드러났다. 강천보를 관리하는 한강통합물관리센터 관계자는 “이번 가뭄에 강이 모두 말랐지만 그나마 이 보에 가둬놓은 물을 인근 천수답에 지원해 해갈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보에 있는 물을 양수기로 퍼 물차에 싣고 말라버린 저수지로 날랐다는 것이다. 정말 한심한 물 관리 대책이 아닐 수 없다.

한강 강천보 옆에 세워진 한강문화관과 4대강 유공자 이름을 새긴 기념탑.

한강 강천보 옆에 세워진 한강문화관과 4대강 유공자 이름을 새긴 기념탑.

건조물 위해 매년 엄청난 예산 들어가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월 3~5일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상대로 한 4대강 사업에 대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4대강 사업은 ‘잘못한 일’로 평가했고, 17%만이 ‘잘한 일’이라고 응답했다.(15%는 의견 유보)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46%로 ‘잘한 일’이라는 응답(33%)보다 높았다. 이젠 국민 여론도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한강 강천보 앞에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낚시금지, 야영금지, 수상레저 금지 경고판이다. 한강을 그냥 쳐다만 보라는 얘기다. 4대강 사업의 핵심 모토였던 ‘물·자연·사람’에서 중요한 사람은 빠진 것이다. 사실 사람만 빠진 것이 아니라 보에 고인 물은 썩고, 자연은 파괴됐다. 그러니까 4대강 사업의 핵심 모토였던 3개 물·자연·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 국토연구원의 ‘국가하천 유지·관리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4대강 유지를 위해 매년 1600여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됐다. 건국 이래 최대 토목사업이 수질오염·환경파괴뿐만 아니라 엄청난 유지비용까지 들어가는 애물덩어리로 전락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 중에는 아예 보를 폭파시키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토목사업은 과학이고, 또 철저히 과학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정치논리가 끼어 들어 과학을 오염시킨 것이다. MB 정부의 4대강 사업은 과학이 정치논리에 철저히 유린됐다. 그 후유증은 환경파괴는 물론, 고스란히 후손들의 경제적 부담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누가 과학을 정치논리에 오염시켰는가. 흔히 4대강 건설의 4적, 혹은 5적이 거론된다. 물론 가장 핵심 인물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다음은 권도엽·정종환 건설 당시 국토해양부 장관, 그리고 심명필 4대강 추진단장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들만의 책임일까. 댐을 보라고 우긴 토목학자, 환경파괴를 알면서도 묵인한 환경학자 및 국토교통부·환경부 공무원, 사업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듯한 용역보고서를 수용한 한국수자원공사 간부들이 모두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한강 강천보 옆에는 4대강 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검은 옥돌에 ‘한강 새물결’이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서 있다. 이 기념비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앞서 거론한 4대강 4적을 비롯해 당시 관련부처 고위 공무원, 학자, 건설기획자 등 3600명의 이름을 빼곡히 새겨 넣었다. 바로 이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과학을 정치에 오염시킨 장본인이다. 이제 이 기념비 이름을 ‘과학을 정치에 오염시켜 국고를 낭비한 인물들’로 고쳐 달아야 하지 않을까.

<글/원희복 선임기자·사진/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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