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일본 정부에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을 60% 이상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일본 내 공급망 탈탄소화를 위한 244개 기업 연합체인 ‘일본 기후 리더스 파트너십(JCLP)’은 다국적 기업들의 RE100 압박이 거세짐에 따라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공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정부에 목소리를 높였다. RE100 이니셔티브는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는 캠페인으로, 참여 기업에 2030년까지 60% 이상 재생에너지 전환 달성을 요구하고 있다. RE100은 바이오매스, 지열, 태양, 수력 그리고 풍력에서 발전된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간주하고, 원자력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6월 대한상의, 한국경제인협회 등 4개 경제단체는 2029년부터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정부에 공식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 공시는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보인데, 가장 시급한 기후 대응에 관련한 정보를 중심으로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이 전세계적인 추세다. 유럽연합은 이번 회계연도에 관한 내용으로 내년부터 공시 의무화를 실시한다. 그 외 대부분의 국가는 2026년부터 지속가능성 보고 기준에 따라 보고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데이터를 인증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공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재생에너지 확대 등 탈탄소로 전환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으니 공시 시기를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속가능성 인증 시스템은 이미 글로벌 ESG 공시 인증인 ISSA 5000이 발표됐으니, 이를 변용해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지 않은 원인은 정책 및 시장구조에 있다. 이는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날짜를 미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업의 미래를 고려했을 때 어리석은 선택이 아닐까?
재생에너지 여건은 어떨까? RE100 이니셔티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RE100 달성이 가장 어려운 지역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선택지 부족, 고비용, 한정된 공급 등이 꼽혔다. 실제로 한국에서 활동 중인 RE100 기업 164개사의 한국 내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비중은 9%로, 분석 대상이었던 9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또한 2024년 기준 428개의 RE100 회원사 중 한국 기업은 36개에 불과하다. 맞다.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원인은 물리적인 환경에 있지 않고, 정책 및 시장구조에 있다. 이는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날짜를 미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업의 미래를 고려했을 때 어리석은 선택이 아닐까?
최근 우리나라의 주요 대기업들이 임원 급여, 직급 수당 등을 삭감하고, 부서별 예산지출을 감축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소식이다. 힘든 상황일수록 불필요한 예산은 삭감하고, 기후 리스크라는 미래의 전망을 토대로 ‘과감한 전환’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