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들은 흔히 자신이 만든 물건을 두고 “자식 같다”고 표현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장인의 ‘가족주의’를 규탄하지 않는다. 여기서 자식이란 사물을 의인화한 비유일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 실제 인간을 앞에 두고 “내 새끼 같다”고 말할 때 듣는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화자의 저의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그런 말은 폭력적 관계를 은폐할 때 사용된다. 아들 같아서 착취하고, 딸 같아서 추행하는 어른들의 레퍼토리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월 25일 기자회견에서 가장 강조했던 말은 ‘내 새끼’였다. “출산한 기분”이라며 손으로 배가 부른 모습까지 흉내 내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미루어보건대 뉴진스 멤버들에 대한 민희진의 애착 감정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감정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본인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가 반복적으로 ‘내 새끼’를 강조하며 말하고자 했던 건 모기업에 대한 성토였다. 모기업 대표 방시혁이 뉴진스를 상품화해 홀대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납득한다 해도 남는 의문이 있다. 그러면 민희진에게는 뉴진스가 상품이 아니란 말인가?
“민희진이 반복적으로 ‘내 새끼’를 강조하며 말하고자 했던 건 모기업에 대한 성토였다. 모기업 대표 방시혁이 뉴진스를 상품화해 홀대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납득한다 해도 남는 의문이 있다. 그러면 민희진에게는 뉴진스가 상품이 아니란 말인가?”
올해 초 뉴진스 멤버 민지는 팬들에게 장문의 사과문을 올렸다. 1년 전 민지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칼국수가 뭐지?”라고 혼잣말을 했고, 이 말을 들은 팬들은 “칼국수도 모르냐”며 비난을 퍼부었다. 나는 살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죄인이 된 사람은 처음 봤다. 궁금하다. ‘내 새끼’가 1년 동안 부당한 비난에 시달렸을 때, 비상식적인 죄의 고백을 강요받았을 때 민희진은 어디 있었던 걸까? 그에 대한 업계의 표준 답변은 팬들의 비난도 사과도 모두 비즈니스일 뿐이며, 아이돌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뿐이라는 것이다. 멤버의 인격보다 팬의 요구가, 회사의 기대이윤이 우선이라면 민희진의 뉴진스는 방시혁의 뉴진스와 무엇이 다른가. 내 새끼가 곤경에 처했을 때 외면했던 엄마는 본인이 궁지에 몰리자 내 새끼를 소환했다.
뉴진스는 K팝 계보에서도 가장 이상화된 아이돌로 평가받는다. 시공간을 초월한 뉴진스의 콘셉트를 빚어낸 사람이 ‘콘셉트 장인’ 민희진이다. 방시혁이 10대 연습생들을 자본으로 환전해내는 사업가라면 민희진은 그들을 질료 삼아 상품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제작자다. 사물화된 관계라는 점에서 민희진의 뉴진스는 방시혁의 뉴진스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민희진의 내 새끼론이 기괴한 이유는 원래 인격이 있는 존재에 다른 인격을 부여해 ‘내 새끼’를 출산하는 K팝 산업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 새끼’를 강조할수록 내 새끼 아님이 드러나며 상품임을 은폐할수록 본인이 만든 상품이라는 진실이 부각된다.
그들은 서로 뉴진스가 자기 아이라며 대중에게 솔로몬의 판결을 내려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누구의 새끼인가’가 아니라 이 산업이 이렇게 흘러가도록 두어도 정말 괜찮은가 하는 질문이다.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