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분야의 이율곡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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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ICT 분야의 이율곡 프레임

정부가 ICT 분야에서 새로운 정책이라며 청사진을 펼쳐 놓을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단골 메뉴가 ‘전문인력 양성’이다. 전문인력을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까지 정부 주도로 양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신설하거나 지정하고, 그에 따른 자격증을 신설하고, 이를 위한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규모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화려한 로드맵이 제시된다.

ICT 분야의 트렌드 변화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양성하겠다는 전문인력의 담당분야도 숨 가쁘게 확장된다. 빅데이터 전문인력, 인공지능 전문인력, 블록체인 전문인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괄한 4차 산업혁명 전문인력에 이르기까지 온갖 전문인력 양성계획과 그에 따른 자격증 신설계획이 난무한다. 조선시대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을 차용한 듯하니 가히 ‘ICT판 이율곡 프레임’이라 부를 만하다.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현되지 못했지만 오늘날 ICT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론은 이념도 초월한 듯 보인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몇 차례 정권교체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포장만 갈아입고 정부 정책으로 계속 얼굴을 내미니 말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 ICT 분야에서의 정책 상상력만큼은 재탕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데이터 경제 활성화 방안과 관련하여 정부가 데이터 전문인력 5만명 양성이라는 계획을 내놨다.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기술 역량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국가기술 자격증을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편성될 예산이 5068억원이라고 한다.

이것이 재탕이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불과 1년 전 정부가 발표한 빅데이터 전문가 자격증 신설계획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에 발표된 빅데이터 자격증 신설계획마저도 이미 한국데이터진흥원이 주관하고 있는 데이터분석전문가 자격증과 내용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이번 데이터 전문인력 자격증 계획은 재탕도 모자라 삼탕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데이터 전문인력이란 것이 어떤 역량을 갖춘 사람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엄밀한 정의도 없고, 5만명이란 사회적 수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근거로 산출된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또 급변하는 ICT 트렌드 변화를 감안할 때 과연 그 수요가 얼마만큼 장기지속성을 가질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최근 정부가 양성하겠다고 구상한 ICT 분야 전문인력을 모두 합치면 수십만 명에 달한다. 역대 정부의 계획까지 다 제대로 구현됐다면 이미 수백만 명의 ICT 전문인력이 흘러 넘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문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그 많은 전문인력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앞으로 나올 전문인력들은 또 어디로 가게 될까?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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