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숙원사업인 수도 이전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8월 17일 독립기념일에 맞춰 새 수도 누산타라에서 수도 이전을 공식 선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도 이전을 두 달 앞두고 최고 책임자 2명이 갑작스럽게 사임하더니 별다른 설명 없이 자카르타와 누산타라 두 곳에서 각각 독립기념 행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7월 초까지만 해도 조코위는 누산타라의 새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할 것이라며 수도 이전에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싱가포르 언론 CNA는 지난 7월 8일 조코위가 전기, 수도와 같은 기본 인프라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며 수도 이전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포화상태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3340만명이 거주하고 있어 심각한 과밀상태다. 해마다 최대 8㎝씩 지반도 침하하고 있다. 게다가 극심한 차량 정체와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으로 오래전부터 수도 이전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핵심 권력과 자본이 몰려 있는 자카르타 기득권의 반대가 극심해 매번 무산됐다. 그런데도 재선에 성공해 국민의 지지를 업은 조코위는 2019년 4월 칼리만탄(보르네오섬)에 새 수도 누산타라 건립을 선포한다. 2040년까지 모두 3단계로 진행되는 인도네시아 새 수도 건립사업은 1단계로 2024년까지 대통령궁, 정부청사, 국회 등 주요 국가기관 이전을 목표로 한다. 2단계는 2030년까지 6개 위성도시를 포함해 교육, 의료 상업지구 등을 개발하고 2040년까지 수도 확장 사업을 하는 것을 3단계로 사업이 종료된다.
총비용 300억달러(약 40조원)의 수도 건립 사업은 인도네시아 정부 예산 20%를 투입하고, 나머지는 해외투자를 포함한 민간자본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업 진행이 차질을 빚었고,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투자 유치는 쉽지 않았다.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조코위가 해외 곳곳을 다니며 누산타라 외자 유치에 나섰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투자 유치가 어려운 이유로는 정권 교체로 인한 수도 이전 프로젝트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는 10월 20일 취임하는 대통령 당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선거기간 중에는 수도 이전을 지속하겠다더니 당선 이후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대선 공약인 8230만명의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100% 무상급식을 우선 이행하겠다는 공언을 여러 차례 하고 있다.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은 연간 450조루피아(약 38조5000억원)으로 수도 건립 전체 사업비와 맞먹는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와 무디스는 무상급식 공약 이행 시 인도네시아 재정위기를 경고하고 나섰지만, 프라보워 측은 국가부채에 대담해지겠다고 맞받아쳤다. 지난 7월 18일 무상급식 공약 이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변하던 프라보워의 조카가 신임 재무부 차관에 임명되면서 무상급식에 밀린 수도 이전 사업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산물 누산타라
세계 주요 언론은 조코위가 임기 내에 수도 이전 프로젝트를 안착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보르네오섬으로 수도를 이전하면 현지 자연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는 환경보호론자들의 비난도 쏟아졌다. 게다가 고등교육을 받은 대도시 출신의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은 상류층을 형성하고 현지 원주민들은 하층민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조코위는 수도 이전 계획을 강행했다. 인도네시아 국민 지지율이 77%에 달하고, 인도네시아 외교 위상을 드높인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던 조코위는 왜 수도 이전에 집착할까?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자바섬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5월 16일자에 실린 조코위와의 인터뷰를 통해 누산타라 수도 이전 속뜻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누산타라는 고대 자바어로 ‘군도’(무리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섬들)라는 뜻으로 1만7000여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수도를 뜻한다고 한다. 즉 지금까지 자카르타는 전체인구의 57%가 모여 살고, GDP 60%가 집중된 자바섬만을 위한 수도였다면 누산타라는 인도네시아 전체를 위한 수도라는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수도 이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도네시아만을 위한 수도가 아닌 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필리핀 모두를 아우르는 아세안 해양대국의 중심지 역할을 원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2022년 2월 독일 언론 도이체 벨레(DW)는 인도네시아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라하디안 룬잔(Rahadian Rundjan)의 외부 기고를 통해 조코위의 수도 이전 계획은 ‘과거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함’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수도 자카르타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건설된 도시로 인도네시아에서 착취한 향신료를 유럽에 원활하게 수출하기 적합한 위치에 건립됐다. 인도네시아 지도를 펼쳐보면 자카르타는 인도양을 통해 유럽을 향한 대서양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좋은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세안 중심 수도라 하기에는 외곽 밑으로 처져 있다. 이에 반해 새 수도 누산타라는 아세안 해양 5개국의 중심에 있다. 게다가 보르네오섬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소외된 영토인 ‘사라왁’과 ‘사바’주가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라하디안 룬잔은 “보르네오섬에 새 수도 누산타라가 들어서면 말레이시아의 외곽지역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코위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와의 연합체를 꿈꾸고 그 연결 고리로 새 수도를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르네오섬에 새 수도를 건립하는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제시한 사람은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였다. 수카르노는 1950년 식민지배의 산물인 자카르타 대신 보르네오섬에 새 수도를 건립하고 말레이시아와 연방국을 수립하고자 했다. 앞서 ‘가깝고도 먼 아세안’ 11회(주간경향 1529호 말레이·필리핀·인니 ‘마필린도’를 꿈꾸었다)에서 다룬 것처럼 아세안 해양 5개국은 본래 한 뿌리였다. 조코위는 수카르노처럼 인도네시아에 국한되지 않은 아세안 5개국 연합국가를 꿈꾸고 수도 이전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조코위는 이 큰 그림을 위해 지난 2월 치러진 대선에서 자신이 속한 여당 후보 대신 반대 진영이자 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프라보워를 지지해 대통령에 당선시켰지만 토사구팽당하게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라보워가 소유한 재벌 기업 이름이 ‘누산타라 그룹’인데 누산타라 수도 이전 계획은 프라보워에 의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