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 꽁꽁 얼린 중국 ‘정찰풍선’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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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를 과연 ‘신냉전’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최근 미국 본토 상공에서 신냉전 기류를 실감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의 ‘스파이 풍선’ 사태다. 중국 정찰풍선은 미국 영공을 침범한 지 일주일 만에 격추됐지만, 미·중 갈등이 언제라도 예기치 못한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에 형식적으로나마 조성되는 듯했던 대화 국면도 물 건너갔다. 정찰풍선 격추 작전을 둘러싼 전말과 미국, 중국 양쪽의 시각을 짚어봤다.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을 벗어난 대서양 상공에서 중국 정찰풍선이 격추된 후 추락하고 있다. / AP연합뉴스(차드 피시 제공)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을 벗어난 대서양 상공에서 중국 정찰풍선이 격추된 후 추락하고 있다. / AP연합뉴스(차드 피시 제공)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동부 해안 상공. 멀리서 보면 달 모양을 한 흰색 물체를 향해 미 공군 F-22 랩터 전투기가 직선에 가까운 궤도를 그리며 날아갔다. 이어 전투기에서 발사된 AIM-9X 공대공 미사일 한 발이 물체를 명중했다. 날카로운 바늘에 찔려 터져버려 맥도 못 추고 추락한 이 물체는 중국이 보낸 정찰풍선이었다.

미국이 풍선을 격추하기까지 미국은 지난 1월 28일 알래스카 서쪽 알류샨 열도 상공에 진입한 중국 정찰풍선을 포착했다. 미군 당국은 이때만 해도 중국이 미국 주변 방위망을 정찰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캐나다 북서부 쪽으로 넘어갔던 풍선은 사흘 뒤인 31일 미 북부 아이다호에 재진입했다.

특히 지난 2월 1일 풍선이 몬태나주의 맘스트롬 공군기지 상공에 도달하자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이곳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관·운용하는 격납고 150개가 소재한 미국의 주요 정보자산이다. 미국은 풍선을 격추하는 ‘군사적 옵션’을 검토했으나 잔해로 인한 지상 피해 등을 우려해 잠시 보류했다.

2월 2일 언론 보도와 국방부 발표로 중국 정찰풍선의 존재가 알려지자 공화당이 공세를 시작했다. 즉시 풍선을 격추하지 않는 바이든 정부를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며칠째 미국의 하늘을 휘젓고 다니는 중국 정찰풍선을 목격한 미국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베이징으로 떠나기 이틀 전인 지난 2월 3일 중국 방문 일정을 전격 연기했다.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블링컨 장관은 “중국 정찰풍선의 존재는 미국의 주권과 국제법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무책임한 행위”라며 “현시점에서 건설적인 방중을 위한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풍선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 상공으로 옮겨간 2월 4일, 인근 공항 항공기 이·착륙을 금지한 상태에서 격추 작전을 했다.

중국이 정찰풍선을 보낸 까닭은 중국은 사태 초기부터 풍선이 기상 관측과 과학 연구를 위해 보낸 민간 비행선이며, 바람 때문에 항로를 이탈해 미국에 진입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거짓 설명”이라며 중국이 방향을 조정해 미 군사기지를 정찰했다고 반박했다.

풍선의 실제 정찰 역량은 수거한 잔해 분석 등을 거쳐 보다 정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당장 떠오르는 궁금증은 중국이 정찰풍선을 띄운 이유다.

굳이 풍선과 같은 ‘아날로그’ 방식이 아니더라도 위성으로 감시·정찰 활동을 수행할 기술력을 중국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풍선은 위성에 비해 덩치가 훨씬 크기 때문에 쉽게 노출될 위험도 크다.

미국 해군 폭발물처리반(EOD) 소속 병사들이 지난 2월 5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앞바다에서 전날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시킨 중국 정찰풍선의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 해군 폭발물처리반(EOD) 소속 병사들이 지난 2월 5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앞바다에서 전날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시킨 중국 정찰풍선의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 때문에 중국이 단순 정찰 목적이 아니라 미국의 대응을 시험하기 위해 풍선을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의 방공 능력을 테스트하고, 풍선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떠보려 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미 본토를 지켜볼 수 있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다만 풍선에도 장점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위성과 달리 풍선은 한 지점에 오래 떠 있으면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비행 고도가 인공위성(2만㎞)보다는 지상에서 가깝기 때문에 위성과 다른 각도에서 양질의 촬영물을 얻을 수도 있다. 위성보다 비용도 저렴하다. 풍선이 바람을 타고 예상치 못한 경로로 갔다가 의외의 소득을 얻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현대식 정찰풍선에는 드론 시스템, 미사일 탐지 능력을 장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정찰풍선을 운용해온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이 지난 10년 동안 정찰풍선 20~30개를 띄웠다”며 현재도 5개의 중국 정찰풍선이 전 세계 상공을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관계 당분간 ‘흐림’ 18~19세기 무렵 서구의 전장에서는 적을 감시하기 위한 열기구가 등장했다. 그로부터 200여년도 훨씬 지난 지금,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첨단 무기가 활개치는 21세기에 풍선이 재등장한 것은 분명 초유의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국,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상대 국가의 영공에 은밀하게 정찰기를 진입시켜 정보 수집 활동을 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소 냉전 시기인 1960년 미국이 U2 정찰기를 소련 상공에 보내 감시하다가 격추된 적도 있다. 당시 미국은 ‘조종사 실종’으로 처리했지만, 비행기에서 탈출한 조종사가 소련에 생포되면서 미국이 오랜 시간 정찰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정찰풍선을 둘러싼 공방은 미·중 간에는 물론 미국 국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미 국방부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 세 차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한 차례 중국 정찰풍선이 미 영공을 침범했다고 발표한 이후 미국 전·현 행정부 간에 진실공방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핵심인사들이 이 같은 발표를 부인하자, 국방부는 사후에야 탐지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중국은 미국의 정찰풍선 격추에 대해 “무력을 사용해 민간 무인 비행선을 공격한 미국에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시한다”(중국 외교부 성명)며 강력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두 번째 국정연설에서 “중국이 우리의 주권을 위협하면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초부터 미·중 관계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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