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회담의 의미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가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회원국 중 5개국 순방을 위해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정부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 / 도쿄 | AP·교도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가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회원국 중 5개국 순방을 위해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정부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 / 도쿄 | AP·교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13일(현지시간) 아세안 정상회의 이후 두 달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이번 만남은 일본이 지난해 말 ‘적 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를 천명한 뒤 가진 미국과의 첫 정상회담이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컸다. 특히 미국이 이날 일본의 반격 능력 확보에 강한 지지를 나타내면서 군사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계획에 속도가 붙게 됐다. 향후 방위협력지침 개정 등 반격 능력의 운용을 위한 절차까지 이행되면, 일본의 ‘전수(專守)방위’를 전제로 하던 미·일 동맹은 70여년 만에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전망이다.

일 ‘방위력 강화’ 지지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기시다 총리와의 회담에서 “일본의 역사적 방위비 지출 증대와 새 국가안보전략을 환영한다”며 자위력을 증강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안보전략을 채택한 일본의 최근 행보를 ‘담대한 리더십’이라 평가했다. 그는 또 “양국 장관들에게 일본의 반격 능력 및 다른 대응력의 발전과 효율적 적용을 위한 협력 강화를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를 강하게 지지하며,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 협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날 미국의 발표로 ‘전수방위’ 원칙을 넘어 방위력을 키우려는 일본의 노선에 힘이 실리게 됐다. 앞서 일본은 지난해 말 유사시 적 미사일 기지를 선제공격하는 능력을 확보하고, 2027년까지 방위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두 배가량 늘리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종전 이후 유지된 일본의 전수방위 원칙을 사실상 형해화시키는 것이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이 이날 일본의 계획을 지지하면서 기시다 총리로선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게 됐다.

미·일은 이번 회담에서 일본의 안보 대응이 변화될 필요성과 관련해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 어긋나는 중국의 행동’과 북한의 위협 증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이유로 들었다. 미·일 방위조약을 권한과 의무를 함께 부담하는 ‘상호방위조약’으로 진화시켜 완전한 동맹 역할을 하겠다는 일본의 의지와 이를 중국 견제 및 세계 패권 유지에 활용하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로 해석된다. 일본이 반격 능력을 보유하면 당장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미사일을 일본에 배치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일 군사협력 강화 양국은 지난 1월 11일 열린 외교·국방장관 ‘2+2회담’에서 중국 등의 위협을 상정한 구체적인 군사협력 방안들을 내놓기도 했다. 2025년까지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는 미 해병대를 ‘해병연안연대’로 재편하겠다는 방침이 대표적이다. 미 정부는 그간 동·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도서지역 싸움에 대응할 수 있는 전투체제 구축을 서둘러왔다. 해병연안연대는 이 같은 체제에서 핵심이 되는 부대로, 기동성이 강화되고 장사정 대함미사일과 방공 기능을 갖춰 적의 함정과 전투기 진출을 막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일의 군사협력은 우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미·일 양측에 대한 공격 모두를 방위의무 대상에 포함하는 미·일 안보조약 제5조를 우주 공간에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인공위성이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방어해줄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중국과 러시아는 우주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위성통신을 방해하거나, 위성을 파괴하는 무기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미국과 일본 외교·국방장관들이 지난 1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양국 ‘외교·국방 2+2회담’을 연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워싱턴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일본 외교·국방장관들이 지난 1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양국 ‘외교·국방 2+2회담’을 연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워싱턴 |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이 미·일 동맹의 성격과 동맹 내에서 일본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토퍼 존스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수석고문은 “일본과 미국의 전략이 사실상 처음으로 통합된 것”이라며 “과거에는 미국이 일본과 대만 사태를 논의하는 걸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젠 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중국과 북한은 공격할 때 일본의 반응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이젠 일본이 미국과 함께 반격 능력을 보유하며 상황이 달라졌다”고도 말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일은 일본의 반격 능력 실행을 위한 양국 군의 역할과 운용 방식 등 구체적 내용을 실무선에서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방위협력지침의 변경과 관련된 것으로, 미·일 동맹에서 일본의 역할을 재규정하는 작업이다. 1978년 미·일 간 첫 방위협력지침 제정 당시만 해도 일본의 역할은 ‘방패’로 국한됐다. 이제는 일본이 창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갈 길 먼 기시다 내각 기시다 총리는 이번 순방에서 큰 외교적 성과를 얻어냈으나 방위력 강화가 현실화되기까지는 남은 과제가 많다. 바닥을 치고 있는 지지율로 인해 내각의 미래부터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이 기시다 총리의 순방 기간 중 조사해 지난 1월 1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내각 지지율은 39%로 지난달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는 외교적 성과를 지지율 반등의 계기로 삼고자 했던 기시다 내각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다.

저조한 지지율에는 여러 변수가 영향을 미쳤다. 기시다 내각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의 유착 문제로 지난해 10월 이후 각료 4명이 사임했다. 물가 급등에 따른 경제난과 방위비 증액을 위한 증세 문제로 민심이 떠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증세에 대한 반대가 여야 지지층을 막론하고 높은 편이다. 요미우리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방위비 증액을 위해 세금을 올리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이들은 응답자의 63%로 찬성 28%를 크게 웃돌았다. 여당 지지층에서도 증세 반대(49%)가 찬성(43%)보다 많았다. 방위비 증액에 찬성하는 이들(전체의 43%) 중에서도 40%는 증세에 반대했다.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증세 추진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은 지난 1월 23일 시작된 정기국회에서 증세 문제 등과 관련해 기시다 내각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기시다 내각이 대내적 반발을 극복하고 방위력 강화라는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용하 국제부 기자 yong14h@kyunghyang.com>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