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중동서 날아온 열기와 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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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7년 동안 있었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거주하며 중동의 환경과 물 관련 정부 과제를 수행했다. 7월 말 어느 여름밤, 아부다비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항 바깥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눈이 보이지 않았다. 불빛과 물체는 분명히 있는데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100%에 가까운 습도와 중동의 열대야는 나의 안경을 짙은 회색 색안경으로 바꿔놓았다. 한동안 망부석처럼 한곳에 서 있었다. 중동 날씨의 악평을 미리 공부하고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현실의 위력 앞에서 무기력했다.

‘2022 카타르월드컵’ 경기가 열린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 지난 11월 21일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2022 카타르월드컵’ 경기가 열린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 지난 11월 21일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작열하는 중동의 여름 태양 아래, 바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을 넘어 고통을 느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기와 한증막 같은 습도는 온몸을 땀범벅으로 적셔버렸다. 지글거리는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 있노라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지옥도에 나오는 뜨거운 불가마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종종 생각했다.

이 더위와 습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에어컨이 있는 실내다. 오일머니로 부유한 현지인들은 냉방이 돼 있는 가정과 일터에서 생활하고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차로 이동한다. 운동하기 위해 저녁이나 주말에는 냉방된 실내 쇼핑몰을 돌아다닌다. 태양이 ‘풍부’한 곳임에도 많은 현지인은 신체가 햇빛을 사용해 생성하는 비타민D 결핍으로 고통받는다.

매우 건조한 국가인 아랍에미리트는 물을 많이 쓴다. 1인당 하루 물 소비량이 550ℓ를 넘는다. 독일(150ℓ), 호주(220ℓ), 한국(280ℓ), 일본(310ℓ), 미국(390ℓ)을 훨씬 상회하는 물 수요량이다. 더운 지역이기에 물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도 있지만, 모래바람으로 쉽게 더럽혀진 차를 자주 씻고 가정마다 수영장과 정원을 만들며 물을 마음껏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막 국가지만 녹색 정원 도시를 꿈꾸며 나무를 많이 심고 물이 풍요로운 도시처럼 운용한다.

물 수요의 대부분을 해수 담수화 플랜트에서 생산한다. 담수 플랜트는 많은 화석연료를 연료로 사용한다. 담수화의 부산물로 나오는 염수와 독성화학물질의 찌꺼기는 바다에 버려진다. 이들은 해양생태계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담수 플랜트를 설치하고 송수관으로 물을 보낸다. 도시의 가정으로 들어오는 물은 쾌적한 사용을 위해 에어컨을 이용해 온도를 낮춘다. 이 모든 에너지와 물은 화석연료의 풍요로움과 연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들을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사막에 살고 있으니 아직 나무도 부족한 상태에서 물의 사용을 줄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으니 자동차를 타지 말고 원래 사용하던 낙타를 이용하라고 할 수 있을까? 혹독한 중동의 더위를 피하려 에어컨을 돌린다고, 원래 살던 대로 더위를 참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도 서구 선진국처럼 삶이 향상되기를 바란다. 그들도 자동차를 타고, 전기를 사용하고, 냉방을 통해 삶을 쾌적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지구의 기후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로 인해 화석연료가 아닌 다른 에너지로 대체하려는 숙제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카타르에선 중동 최초의 월드컵 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주변 중동국가들도 기후위기를 풀기 위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동참한다. 동시에 오일머니로 쌓아 올린 불안한 경제 구조를 다각화해 현대적 산업경제를 가진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싶어한다. 중동국가 중 하나인 카타르에서 월드컵축구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속으로 웃었다. 여름에 열리는 월드컵이 한낮 온도 50도를 넘나드는 중동의 열기와는 타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곧 카타르가 가진 고민을 이해했다.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알리고, 관광과 스포츠 산업을 키우려는 의도였다.

카타르도 인류의 기후위기와 탈탄소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한 지 12년 만에 카타르의 연평균 기온이 1도 높아져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월드컵을 전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대회로 운영한다고 천명했다. 월드컵 모든 8개 경기장에서 태양광 전력을 이용한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월드컵 경기장 중 한 곳인 974 스타디움은 화물용 컨테이너 974개를 활용해 건축했다. 월드컵 이후에는 전면 해체해 컨테이너를 재활용할 계획이다. 친환경을 고려한 조치다.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로 성장한 카타르가 탈탄소를 표방하는 표어는 어딘가 어설프다. 카타르는 오일머니를 통해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면서 개최권을 따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월드컵에 필요한 경기장, 고속도로, 지하철 등을 건설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은 50도 넘는 온도에서 일했다. 수백, 어쩌면 수천명이 폭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더위로부터 팬과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월드컵이 여름이 아닌 겨울에 열렸다. 축구경기장 전체를 거대한 에어컨으로 도배했다. 화석연료를 연소한 에너지를 주로 사용했다. 친환경을 주장하지만, 카타르를 움직이는 힘은 여전히 화석연료다.

이집트에선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월드컵과 비슷한 시기에 중동에서 시작한 다른 이벤트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였다. 유엔 당사국과 기업, 시민사회가 모두 모여 기후위기를 협의하는 자리다. 1995년을 시작으로 매년 개최해 올해 27번째다. 역설적으로 중동의 한곳에서는 화석연료의 검은돈이 월드컵을 열었고, 다른 한곳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어떻게 화석연료를 줄일까를 고민했다.

당사국총회는 폐막일을 이틀 넘겨 새벽까지 협상을 벌인 끝에 국제사회가 기후변화로 개발도상국에 집중된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기금을 설립한다고 합의했다. 선진국은 화석연료 대량 사용 등 기후온난화 가스를 200년 가까이 뿜으면서 산업화를 이룩했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나라들은 기후온난화 가스 배출은 미미하면서도 선진국이 주도한 기후변화 피해를 똑같이 또는 몇 배나 심하게 겪고 있다. 이에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나라를 지원하려는 게 이번 기금의 목적이다.

기금은 과거 선진국이 온실가스 배출의 법적 책임을 지는 배상이나 보상이 아닌 지원으로 규정했다. 배상이나 보상을 인정하면 선진국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무제한적인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염려가 제기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원의 형식으로 타협함으로써 이번에 합의를 이뤘다. 누가, 얼마나, 무엇에,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해선 당사국들의 의견이 여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에 과거 기후변화총회에서 의견 일치는 이뤘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무수한 협의들처럼 이번 합의도 생색내기 ‘공약’이 아닐지 걱정스럽다.

대중의 관심이 뜨거운 월드컵과 대조적으로 기후변화총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냉담하다. 이제 곧 월드컵 열기는 식을 것이다. 반대로 지구의 열기는 계속 올라간다. 기후변화 피해는 그만큼 커진다. 우리가 월드컵 열기에 빠져 있는 사이 지구 어느 한구석의 누군가는 기후변화로 고통받고 목숨을 잃는다. 중동의 더 뜨거워진 태양 아래 월드컵 기간시설을 건설하느라 고통받고 죽어간 사람들처럼.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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