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주도하고 아세안 국가들이 적극 호응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정책’과 ‘지구 온도 상승폭 1.5도 제한목표 달성’에 대한 협의가 있었다. 탄소중립 의제는 앞서 8월에 발리에서 열린 ‘G20 환경 기후장관회의’,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7)’ 등 여러 국제회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아주 중요한 이슈다. 특히 유럽으로 수출하는 제조 공장이 집중된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에게는 EU에서 시행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하지 못하면 수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전 세계 경제계에서는 초미의 관심사다. 기후변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EU는 2026년부터 수입 품목 중 제조 운반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탄소 배출 세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2034년에는 이 제도를 완전히 정착시키기로 했다. 경제적·기술적으로 여력이 없는 아세안 국가들이 기한 내에 탄소 중립을 이룰 수 있도록 EU와 미국이 적극 지원하고 있다.
EU 등 인니·베트남 ‘공정에너지 전환’ 지원
이번 G20 발리 정상회담에서는 이와 관련한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EU와 영국, 노르웨이, 캐나다는 인도네시아를 ‘공정에너지 전환 이행 파트너십(JETP·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의 두 번째 국가로 선정하고, 3~5년간 200억달러(약 26조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JETP는 석탄 수출 세계 2위 국가이자, 세계 10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인도네시아가 석탄 발전 위주에서 친환경적이고 환경오염이 적은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단계적으로 석탄 사용량을 줄이는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광부와 그 가족인 여성, 청소년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교육, 새로운 일자리 창출까지 지원한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JETP를 체결한 국가는 베트남이다. 지난 12월 14일 베트남은 EU, 미국, 영국, 일본,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공정에너지 전환 이행 파트너십을 맺고 155억달러(약 20조원)를 지원받게 됐다. 베트남은 신규 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단계별 목표로 2030년에는 202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30% 줄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는 애초 목표치인 2035년보다 5년이나 앞당긴 수치다. 베트남이 이처럼 자신 있게 목표치를 5년이나 앞당길 수 있는 이유는 지난 20년 동안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율을 빠르게 높였기 때문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1년 현재 베트남은 설치 태양광발전 용량 기준 세계 8위의 국가로 대한민국보다 한 단계 앞선 재생에너지 선도국이다. IRENA는 ‘베트남이 아시아 차세대 녹색 에너지 강국인 이유(Vietnam is Asia’s next green energy powerhouse. Here’s why·2021)’라는 보고서에서 “베트남은 국가 차원에서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이 시급함을 절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2021년 현재 1만6500메가와트(㎿)의 태양광발전 설치 용량을 보유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최대 태양광발전 국가”라고 극찬하고 있다. 신고리원전 1기가 생산하는 발전용량이 1000㎿니 베트남은 태양광만으로 16.5기의 원전발전용량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은 2025년까지 1만7200㎿까지 발전용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으나 민간 기업들의 투자가 급격히 늘고 있어 실제로는 2만5000㎿ 이상 발전용량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풍력발전의 잠재력이 많기로 세계에서 손에 꼽는 국가다. 베트남은 3200㎞의 긴 해안선이 있다. 풍속도 강한 편이다. 특히 남부해안 지역은 평균 풍속이 7~11m/s에 이른다. IRENA는 베트남의 풍력발전 잠재력 보유 면적이 2700㎢에 31만1000㎿ 규모여서 머지않아 동남아시아 최고의 재생에너지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 현재 풍력발전용량은 600㎿에 그치지만 많은 민간 기업과 각 지방 성에서 고산지대와 해상을 중심으로 풍력발전을 설치 중이어서 2025년까지 1만2000㎿, 2030년까지는 1만8000㎿의 발전용량을 대폭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세계 8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집중
잠재력 넘치는 베트남의 또 다른 재생에너지 분야는 생물연료인 바이오매스다. 톱밥, 쌀겨 같은 농업 폐기물이 석탄을 대신해 화력발전 원료가 될 수 있다. 이 바이오매스 원료들은 오염 물질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게다가 자연에서 분해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이 불에 태울 때와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이 생물연료는 자라면서 광합성을 한다. 따라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데다 자연환경에서 무한으로 생산할 수 있는 큰 매력이 있다. 베트남은 쌀과 커피, 설탕이 각각 세계 2위, 4위의 수출국이자 최근 바이오매스 원료로 각광받는 코코넛의 세계적인 산지다. 각 품목의 가공 과정 중에서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쌀겨, 사탕수수, 커피 껍질과 코코넛 껍질 등의 농업 폐기물은 석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매스 에너지의 자원이 된다.
베트남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민간 기업을 통해 태양광과 풍력발전 시설을 급격히 설치했지만 이를 전기로 사용할 수 있는 송전망 노후화와 용량 부족으로 원활한 전력 배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베트남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가 전체 전력 설비 용량의 28%를 차지하고 있지만, 실제 전력생산은 송전로 미비로 8%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베트남 국회는 국가송전망에 대해 민간 기업의 투자를 허용하는 전력법을 개정 통과시켰지만, 구체적인 시행 규칙이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생산기지로서 중국 대체 후보지로 꼽히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운을 걸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들에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호찌민 |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