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금은 민주주의 재점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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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초유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 큰 충격받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무사히 끝났다. 한주 전 충격적인 미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 이후 2만5000명의 주 방위군에 에워싸인 채 치러진 취임식이었다. 큰 물리적 충돌 없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UPI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UPI연합뉴스

미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을 ‘최고의 치유자(healer in chief)’라고 부른다. 많은 시민은 미 대선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빨리 치유되고,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일상에 복귀하기를 원한다. 바이든 정부의 첫 번째 과제가 미국의 손상된 이미지 회복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쇠퇴했을지도 모른다.

우선 트럼프의 지지층이 쉽게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며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곳이고 미국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국회의사당 습격은 가장 위대한 미국은 어디에 있으며 가장 위대한 미국 시민이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 초유의 사건이었다.

폭력적 모습 적나라하게 드러나

의사당에서의 폭동은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미국의 폭력적인 모습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버지니아주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총기 수호 집회에는 약 2만명이 모였고, 이들 중 상당수는 무장한 채로 참여했다. 지난해 3월 미시간주의 코로나19 봉쇄조치에 분노한 수백명의 무장 폭도들은 미시간주 의사당에 모여 AR-15 소총으로 의원들을 위협했다. 8월에는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아이다호 주의회 의사당에서 전염병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입법 회의를 무력으로 방해했다. 12월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한 특별입법 회의 중인 오리건주의 의회에 군중들이 진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는 앞으로도 선거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은 그가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믿을 것이다. 아니 믿고 싶을 것이다. 이는 지난주 폭동 때 큐어넌(QAnon) 지도자가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이건 시간문제일 뿐이고 정의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폭탄이나 총으로 대규모 혼란을 일으키는 데 많은 돈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극우 단체에 대한 지지는 이미 입법 관계 기관들 깊숙한 곳까지 확대됐는지도 모른다. 국회의사당 폭동에는 미국 전역의 군 참전용사, 현직 군인, 당일 비번 경찰관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여름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국면에서 많은 경찰관이 우파적 방향으로 급선회한 것은 사실이다.

극우 극단주의 출현 대비 못 해

심지어 일부에서는 국회의원들도 폭도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집회를 조직했던 알리 알렉산더는 공화당 소속의 앤디 빅스(애리조나주) 의원, 모 브룩스(앨라배마주) 의원, 폴 고사르(애리조나주) 의원 등 강경파 트럼프 지지자인 하원의원 3명의 지지를 받아 의사당을 습격하려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불평등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생산성 임금 격차에 대한 경제정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5년 동안 미국의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한 반면, 모든 경제적 이득은 엘리트나 중상류 계층에게 집약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대테러 기관들은 이슬람교도들의 감시와 치안 유지에만 집중해 왔다. 미국 내 극우 극단주의의 출현에 대해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부패한 엘리트들에 대한 서민 계층의 분노, 이들의 분노를 기반으로 한 포퓰리즘, 여기에 극우 민족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까지 뒤섞인 백인 우월주의는 사법 당국의 무관심 속에 폭력적이고 무장된 형태의 폭도들로 자라났다.

미국을 둘러싼 대외적 환경 또한 녹록지 않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성격은 극과 극이지만, 두 정부의 아시아 정책은 연속성이 있다. 경제 불안이 커짐에 따라 미국과 중국 간에는 더 큰 경쟁이 이어질 것이며,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화를 가속할 수도 있다. 대북 압박 정책을 최대한 강하게 고수할지도 모른다.

이런 대외적 환경을 바탕으로 바이든 정부는 한국 정부에 ▲대중국 견제를 위한 ‘쿼드(Quad)’ 가입 ▲동북아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을 위해 한일 간의 역사적 사안들을 쟁점화하지 않을 것 ▲방위비 분담금 인상 ▲대북 제재 협조를 요구할 수도 있다. 바이든 정부의 출현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지 불안 요소로 작용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의사당 습격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미국 사회는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전면으로 재점검할 기회를 ‘강제로’ 갖게 되었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외정책 또한 포함된다. 이 불확실한 영역을 메워가는 것은 결국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절실함과 평화, 상호존중과 대화를 염원하는 풀뿌리 시민의 목소리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적인 한반도를 위해 판문점 선언 이행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시간이 겨우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에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가 시동을 걸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위민크로스DMZ는 세계 여성평화운동단체로, 2015년에는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주도로 ‘한반도 여성 평화걷기’ 등을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번역: 조영미 여성 평화운동 네트워크 집행위원장,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이현정 위민크로스DMZ 미국 조직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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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