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부족 시대, 일본 소매업계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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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업계는 타업종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패밀리마트는 코인세탁 시장과 피트니스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세븐일레븐은 통신업체 소프트뱅크와 제휴, 공유자전거 서비스에 나선다.

일본에서 소매업에 대한 ‘통념’이 바뀌고 있다.

외식업계에서는 40년 가까이 정착해온 ‘24시간 연중무휴’ 모델이 깨지고 있다. 반면 편의점업계에선 ‘24시간 연중무휴’ 모델을 사수하기 위해 무인화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타업종과의 ‘이종 교배’도 시도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렌털(대여) 서비스를 하거나 의류업체가 피트니스나 건축·인테리어 사업에 진출하는 등 영역을 파괴하는 실험들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저출산·고령화와 심각한 일손 부족을 배경으로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경쟁이 이 같은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로봇 ‘페퍼’가 편의점 체인 로손의 차세대 점포 소개 행사에서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로봇 ‘페퍼’가 편의점 체인 로손의 차세대 점포 소개 행사에서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24시간·연중무휴 영업’ 탈피냐 사수냐

올 한 해 일본 외식업계에서는 ‘24시간·연중무휴’ 영업으로부터의 방향 전환이 잇따랐다.

패밀리 레스토랑 ‘가스토’와 ‘조나단’을 운영하는 스카이락은 지난 2월부터 오전 2시에서 7시까지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로열 호스트’도 지난 1월 24시간 영업을 중단했다.

정기휴일을 도입하는 업체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슌센사바쿠텐구’ 등을 운영하는 텐얼라이드는 섣달 그믐인 오는 31일 전국 120개 점포에서 휴무를 처음 실시하기로 했다. 일본 최대 외식업 기업인 몬테로사도 정기휴일을 도입하기로 했다. ‘로열 호스트’와 스테이크 전문점 ‘카우보이’를 운영하는 로열홀딩스도 연 3회 정기휴무를 도입한다.

일본 외식업계는 1970년대부터 영업시간을 계속 연장하면서 ‘24시간 영업’이나 ‘연중무휴 영업’이 정착했다. 하지만 일손 부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데다, ‘힘들고 불결하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기존 영업모델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객 편의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휴무일 도입 등 ‘좋은 직장 만들기’에도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손 부족 문제를 안고 있는 편의점업계는 외식업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일손 부족분을 메우려는 것이다.

일본 편의점업계 3위인 로손은 내년 봄부터 도쿄 도내 2~3곳에서 심야시간 무인계산 점포를 시험운영한다. 고객 스스로 모바일 결제를 하는 서비스를 도입, 손님이 적은 오전 0~5시 계산작업을 무인화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완전 무인화는 아니고, 점원 1명이 상품 진열이나 청소를 담당한다. 로손은 2016년 겨울부터 오사카 내 점포에서 셀프계산로봇도 운영하고 있다. 편의점업계에선 얼굴 인증 기술로 성별이나 연령대를 파악해 상품을 추천하는 시스템도 확대되고 있다.

편의점업계가 무인화에 힘을 쏟는 목적은 ‘24시간 영업의 지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 정도까지 하지 않으면 24시간 영업모델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일손 부족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일본의 한 택배회사 직원이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트럭 옆을 달려가고 있다./게티이미지코리아

일본의 한 택배회사 직원이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트럭 옆을 달려가고 있다./게티이미지코리아

사실 편의점업계에서는 심야영업을 중단하는 방안을 수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심야영업을 중단한 결과 고객들이 다른 가게로 가면서 낮시간대까지 매출이 하락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자 중단했다. 40년 가까이 자리잡은 ‘24시간·연중무휴 영업’으로 인해 ‘편의점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전제 하에 지역사회와 연결돼 있는 점도 24시간 영업을 포기하기 힘든 이유라고 NHK는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업계 2위인 패밀리마트가 일부 점포를 대상으로 영업시간 단축 시의 영향에 대해 실험을 하고 있어 편의점의 ‘24시간 영업’도 변화를 맞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편의점업계는 타업종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패밀리마트는 코인세탁 시장에 진출한다. 2018년 3월 도쿄가 포함된 간토지방 2개 점포 내에 코인세탁기를 병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8년도에 100점포, 2019년도에는 500점포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패밀리마트는 피트니스사업 진출도 선언했다. 내년부터 건물 1층에 편의점, 2층에 헬스장을 두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해나갈 방침이다.

활발히 진행중인 이종 교배와 영역 파괴

최근 시장이 커지고 있는 공유자전거 서비스에도 발을 넓히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통신업체 소프트뱅크와 제휴, 자사의 편의점에 자전거를 대여·반납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해 공유자전거 서비스에 나선다. 2018년 말까지 전국의 세븐일레븐 매장 1000곳에 자전거 5000대를 갖출 계획이다. 로손도 지난해 8월부터 통신업체 NTT 도코모 계열의 공유자전거 서비스를 도입해 도쿄와 아오모리(靑森) 등 점포 7곳에서 실시하고 있다.

편의점업계가 타업종 서비스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는 것은 결국 떨어져나가는 기존 손님들을 붙잡고, 새로운 손님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일본 소매업계 1위인 편의점은 올해 순증 점포수가 10년 내 최저를 기록하는 등 포화상태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드러그스토어나 슈퍼 등과의 고객 쟁탈전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의 한 백화점 직원이 백화점 입구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게티이미지코리아

일본의 한 백화점 직원이 백화점 입구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게티이미지코리아

반면 코인세탁이나 피트니스는 최근 일본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시장이다. 코인세탁 시장은 학생들 외에 맞벌이 부부나 1인 가구의 이용이 늘면서 지난 10년간 30% 성장했다. 피트니스 시장도 ‘24시간 헬스장’이 인기를 끌면서 2016년도 매상이 전년에 비해 4.6% 증가한 4040억 엔(약 3조9000억원)이었다. 편의점업계로선 한창 크고 있는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이들 시장의 주요 고객들을 편의점으로까지 불러 모으겠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변신’에는 성역이 따로 없다. 전통의 대형 소매점인 백화점도 변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 백화점과 패션빌딩 등 대형 상업시설은 최근 ‘물건을 팔지 않는 점포’를 두고 있다. 인터넷통신판매에 맞서기 위해 렌털이나 체험형 서비스를 통해 고객 유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도쿄 유라쿠초 마루이 백화점은 최근 고급 손목시계 대여점인 ‘가리토케’를 열었다. 월 3980 엔(약 3만8000원)~1만9800 엔(약 19만원)인 대여료를 내면 유명 브랜드 시계를 빌려 찰 수 있다. 마루이는 또 의류와 신발 등 자체 브랜드(PB)에 한해 점포에는 시착용 샘플 상품만 전시하고 실제 판매는 인터넷에서 하는 서비스를 내년 봄까지 전국 10개 점포에 도입할 예정이다.

소고 지바점은 별관에 액세서리 등을 직접 만드는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공방을, 긴테쓰 백화점은 오사카 본점의 특매행사장을 배움의 공간으로 바꿨다. 일부 백화점 매장은 VR(증강현실)을 이용해 직접 옷을 착용하는 가상체험을 하도록 해준다.

편의점 성장 주춤, 코인세탁·피트니스 약진

의류업체는 스포츠시설에 잇따라 참여하고 있다. 대형 의류업체 TSI 홀딩스는 지난 11월 도쿄 하라주크에 피트니스시설을 개설했다. 어두운 실내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스피닝’ 스튜디오다. 의류업체 쥰도 2018년 3월 도쿄 하라주쿠에 스튜디오를 개설할 계획이다.

현재 의류업체는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인 반면 피트니스는 붐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애슬레틱(운동경기)과 레저(여가)를 합한 ‘애슬레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주목, 고객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매업계의 변화 배경에는 저출산·고령화와 이에 따른 소비 감소, 일손 부족 문제 등이 놓여 있다. 이미 일손 부족의 직격탄을 맞은 택배회사는 가격 인상을 하는 한편, 택배 지정 시간 중 ‘낮 12시~오후 2시’ 구간을 없애거나 당일 배송 폐지도 고려하고 있다. 인구 감소 사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김진우 경향신문 도쿄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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