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나 기술적인 면에서 획기적인 진보가 뒤따를지라도 첫 번째 영화가 지닌 ‘신선함’을 넘어서는 ‘뛰어남’이란 없다. 그것은 드림웍스가 내놓는 속편 영화들에서 유독 치명적으로 부각되는 태생적 올무이기도 하다.
제목: 쿵푸 팬더 4(Kung Fu Panda 4)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3분
장르: 애니메이션, 액션, 코미디
감독: 마이크 미첼, 스테파니 스티네
출연: 잭 블랙, 아콰피나, 비올라 데이비스, 더스틴 호프만, 제임스 홍
개봉: 2024년 4월 10일
등급: 전체 관람가
1994년 10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 제프리 카첸버그, 그리고 음반 제작업자 데이비드 게펜이 공동으로 제작사 ‘드림웍스(DreamWorks)’를 설립한다. 그들의 모토는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함정은 ‘새로운’이라는 단어에 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영역 자체부터 평가하는 시선까지 매우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추상적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거창한 각오는 한동안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첫 작품으로 내놓은 <피스메이커>(1997)는 당시 액션영화로서는 드물게 여성 감독 미미 레더에게 연출을 맡겼다. 내용에서도 꽤 현실적인 국제정세 반영과 선악의 기준이 모호한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로 이전까지의 유사 작품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보인다.
첫 번째 애니메이션 작품은 <개미>(1998)였다. 역시 기성 애니메이션이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전체주의와 신분제 같은 사회적 메시지가 노골적인 작품이었는데, 작품 자체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픽사 스튜디오 <벅스 라이프>(1998)와 경쟁과 뒷이야기로 더 많이 기억된다.
두 번째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1998)는 출애굽기와 모세를 소재로 한 말 그대로 대작이었다.
주제곡인 ‘웬 유 빌리브’(When You Believe)를 당시 팝 음악계의 양대 디바로 라이벌이었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의 듀엣으로 성사시킨 것만 봐도 이 작품의 기획이 얼마나 야심 찬 것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
차별화를 꾀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이후에도 한동안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넘나들며 ‘드림웍스’의 장르 영화에 대한 ‘새로운 개척’은 계속 이어졌다. 아마 흥행이나 인지도 면에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인지도를 확실히 각인시킨 첫 작품은 <슈렉>(2001)일 것이다. <마다가스카>(2005), <드래곤 길들이기>(2010), <크루즈 패밀리>(2013) 등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입지를 격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나같이 기존의 형태를 교묘하게 비틀어 변별성을 부각한 작품들이다. 이중에서도 <쿵푸 팬더>(2008)는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쿵푸 팬더 4>가 지난 4월 10일 개봉했다. <쿵푸 팬더 3>가 공개된 것이 2016년이니 8년 만에 나온 속편이다.
시리즈 영화에 있어 다음 속편까지 공백기가 길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조짐이 아니다. 흥행성적이나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요소가 있어 속편이 바로 제작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제작사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런 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중된다.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하루가 멀게 쏟아지는 새로운 작품에 노출된 관객이 전작의 재미와 매력을 잊어버렸거나 다시 찾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새로움이 휘발된 속편의 한계와 아쉬움
전편에서 수련과 성찰을 통해 내면을 채워가던 포(잭 블랙 분)는 4편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비워 영적 지도자로 거듭나야 하는 새로운 난관에 부딪힌다.
외형적 스케일도 확실히 커졌다. 이전까지 주 무대였던 ‘평화의 계곡’을 벗어난 바깥 세계로의 첫 여정이 펼쳐진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도시 ‘주니퍼 시티’의 화려하고 요란한 풍경은 이제껏 쿵푸 팬더가 보여주지 않았던 확실한 새로움을 창조하려 노력한 제작진의 야심으로 읽힌다. 새롭게 등장하는 동료인 코르삭 여우 젠(아콰피나 분)과 여성 악당 카멜레온(비올라 데이비스 분)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부분이다.
“모든 시리즈물에서의 목표는 해당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가 왜 훌륭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두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번 4편의 공동연출자 중 1명인 마이크 미첼 감독의 변이다. 지당하게 들리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속편이 지닌 한계를 인정한 말이기도 하다.
이야기나 기술적인 면에서 아무리 획기적인 진보가 뒤따를지라도 애초 첫 번째 영화가 지닌 ‘신선함’을 넘어서는 ‘뛰어남’이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유독 ‘새로운 영화’를 모토로 했던 드림웍스가 내놓는 속편 영화들에서 유독 치명적으로 부각되는 태생적 올무이기도 하다.
배우보다 가수에 진심인 ‘잭 블랙’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에는 그 유명한 ‘베이비 원 모어 타임(Baby One More Time)’의 리메이크가 흐른다. ‘터네이셔스 D’(사진)라는 그룹에서 가수로도 활동하는 잭 블랙이 직접 불렀는데, 원곡을 부른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발랄한 보컬과 대비되는 묵직하고 강렬한 록 편곡이 흥을 돋운다.
잭 블랙은 1991년 카일 개스와 결성한 어쿠스틱 메탈 밴드 ‘터네이셔스 D’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2006년에는 아예 그룹명을 전면에 내건 코미디 음악영화 <터네이셔스 D>(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를 발표했을 정도다.
그는 자신이 배우보다 가수로 대접받기를 원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최근 배우 활동은 이번 <쿵푸 팬더 4>처럼 목소리 연기에만 치중하는 모습이다.
전작인 애니메이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도 악당 ‘쿠파’의 목소리를 더빙했는데, 절정에 등장하는 애절한 세레나데 ‘피치(Peaches)’도 직접 불러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차기작은 8월 개봉을 앞둔 <보더랜드>로 동명의 스페이스 웨스턴 액션 롤플레잉 1인칭 슈팅 비디오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케이트 블란쳇, 케빈 하트, 제이미 리 커티스, 지나 거손 같은 묵직한 중견 배우가 대거 출연하고, 한때 공포 스릴러 영화의 신성으로 주목받았던 일라이 로스가 메가폰을 잡아 장르 영화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잭 블랙은 원작 게임을 대표하는 마스코트 격인 외바퀴 로봇 ‘클랩트랩(CL4P-TP)’의 목소리를 연기해 화면에 모습을 직접 드러내진 않는다.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귀여운 연기를 좋아하는 팬들의 처지에선 한동안 아쉬움이 계속될 것 같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