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경남 통영 서호시장 대장간-골목 안쪽, 시간이 멈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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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겸의 풍경](61)경남 통영 서호시장 대장간-골목 안쪽, 시간이 멈춘 공간

경남 통영에 가면 늘 들르는 곳이 서호시장이다. 살아 있는 통영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기도 하고, 단골 시락국(시래깃국) 가게가 있어 매번 그곳으로 향한다. 막차를 타고 내려가 새벽 3시에 도착해도 제일 먼저 이 시장을 찾는다. 그 시간에도 시장은 이미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할머니가 귀퉁이에 앉아 생선을 다듬고, 할아버지는 소쿠리 가득히 담은 홍합을 손질한다. 할머니에게 학꽁치회를 부탁하면 두세 명이 너끈하게 먹을 양을 담아준다. 단돈 1만원. 그걸 들고 시락국을 먹으러 간다. 여행의 시작부터 마음이 뜨끈하게 달궈지는 기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통영의 시간.

이번에도 서호시장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숱하게 지나다녔던 시장 안쪽 골목에서 그간 보지 못했던 가게를 발견했다.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에 사라졌을 법한 풍경. 쇳가루가 수북하고 오랫동안 사방에 쌓아둔 금속자재가 한 몸이 돼버린 노포다. 간판도 없다.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은 좀처럼 말이 없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묵묵부답이다. 한참 후에 입을 뗐다. “그러세요.” 고개도 들지 않고 하던 일을 이어가면서 그는 말했다. 평생 공간을 지켜온, 이 일을 해온 사람. 그의 말은 무거웠다. 그 무게에 시간마저 멈춰 선 것만 같은, 옛 대장간이 거기 남아 있었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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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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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