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웨이크- ‘밀실 스릴러 공포’를 표방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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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환각 또는 망상이었다면 그간의 추리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다 죽음을 앞둔 비논리적 섬망의 이미지니까. 불행히도 영화는 그 길로 달려간다.

제목 어웨이크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75분

장르 미스터리 밀실 스릴러

연출/각본 이윤호

출연 임세미, 성지루, 한지원

개봉 2022년 8월 2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제공/배급 ㈜엔픽플

공동제공 엔픽블록

공동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작 ㈜TS나린시네마

플래닛PlanIt

플래닛PlanIt

“이용하신 휴대폰은 발신이 정지되어 있어….”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어, 저렇다면 적어도 통신망 연결은 된다는 소리 아닌가. 긴급통화 버튼 누르면 될 텐데?

영화의 첫 장면. 시작한 지 1분도 안 돼 떠오른 의문이다. ‘누군가가 긴급통화도 막아놓았고, 일방적으로 착신만 가능하게 장치를 해놨다’는 추리가 나오는 것은 한참 뒤다. 저렇게 해놓았다고? 꼬리를 무는 의문. 단순 해킹으로 가능한 일일까. 몰입을 방해한다. 초장부터 실패다.

28세 여성 소진. 눈 뜨고 보니 사방이 막힌 공간이다. “밖에 누구 없어요?” 소리쳐봐야 아무런 반응이 없다. 1시간쯤 흐른 후 옆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중년 아저씨 동혁이다. 들리는 소리로 보아 바로 옆 칸이다. 이어 등장하는 또 한사람. 자기소개 때 혜린이라고 밝혔던 19세 소녀다. 이들은 왜 이런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일까.

밀폐공간에 갇힌 세사람

동혁의 추측처럼 장기밀매단에 납치? 혜린은 비슷한 경험을 해봤다며 방탈출 카페 이야기를 꺼낸다. 그들이 갇혀 있는 곳에 무슨 단서가 있을지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원래 디폴트로 주어지는 건 외부와 통신이 안 되는 스마트폰인 모양이다. 동혁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에이, 휴대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말하는 혜린에게 동혁은 왜 기본적으로 갖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냐고 반박한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공통점이 떠오른다. 마음의 상처다. 혜린은 왕따당해 죽은 친구를 도와주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소진은 몇년 전 자신의 엄마가 집에 스스로 불을 질러 화마로 돌아가신 경험이 있다. 그리고 ‘개저씨’ 동혁은 바닷가에 놀러 갔다 하나뿐인 딸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지 않은 이유다. 놀아달라는 딸에 ‘폰질’에 정신이 팔려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고, 물속에 들어간 어린 딸은 익사했다.

영화의 타임라인은 마구 흩어져 있다. 외부와 통화가 안 되고, 죽음을 알리는 착신전화만 걸려오는 스마트폰엔 생면부지의 이들 세사람, 그리고 한남자가 어딘가의 휴양지에 놀러가 찍은 사진들이 남아 있다. 영화는 어두운 밀실에 갇혀 있는 이들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바깥의 상황을 비춰준다. 이들이 갇혀 있는 밀실은 어느 폐가에 마련된 병원 영안실 시체 안치고다. 칸은 모두 6개인데, 이들 세사람이 위의 3개의 안치실 냉동고에 갇혀 있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앞서 영화의 맨 시작 장면부터 가졌던 의문-이 정도로 납치를 기획하려면 어느 개인의 힘으론 불가능하고, 준(準)국가적인 능력을 가진 유능한 조직 개입이 필요한데?-을 해소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가 있다. 이 모든 게 환각 내지는 망상(illusion)이었다고 퉁치면 된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추리는 의미가 없어진다. 다 죽음을 앞둔 비논리적 섬망의 이미지였을 뿐이니까. 불행히도 영화는 그길로 달려간다.

이하는 스포일러다. 영화를 안 보신 분 중 결말을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여기서 읽기를 멈추시길. ‘알고 보니’ 이 세사람(한사람 더 있다)은 자살카페 같은 데서 만나 같이 죽기로 하고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 길이었다. 어느 바닷가, 텐트 안에 번개탄 2개를 피워놓고, 이들은 잠이 든다.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굳이 해석하자면 앞서의 ‘밀실’은 희미해져가는 의식 가운데 누군가 죽음을 앞두고 보는 환각 같은 거였다. 아마도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28세 소진일 텐데 방화로 소사한 엄마를 만나 오래 살라는 당부를 듣고 밀실에서 탈출해 바닷가로 간다. (순차적이거나 논리적이진 않은데 이 시점엔 그건 이미 중요한 건 아니게 된다. 왜? 이게 다 무의식이 멋대로 흘러가는 대로 나타나는 이미지니까) 그런데 거기서 만나게 되는 것이 동혁의 익사한 딸이다. 즉 그는 살아서 나간 것이 아니라 황천(黃泉)에 갇힌 것이다.

영화를 보고 당장 떠오르는 건 몇년 전 아이들이 TV에서 나오면 무섭다고 울었다는 금연 공익광고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마감한 사람들의 삶이 남긴 아련한 여운? 만듦새에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밀실공포물과 저예산 독립영화

경향자료

경향자료


아마 ‘깨어보니 밀실에 갇혔다’는 영화의 설정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떠올릴 영화는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배우(우리에게는 <데드풀>의 주인공으로 친숙한)를 알린 첫 영화쯤으로 기억될 <베리드>(2010·사진)일 것이다. 국내에서도 꽤 화제를 모았던 영화로, 영화의 유일한 배경은 ‘관’이었다. 어찌 보면 모험이었다. 자칫 단조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단이자 매개는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외부와의 소통수단, 즉 휴대전화였다. 결국 절망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엔딩은 논란도 낳았지만, 그래서였기에 오랫동안 기억되고 다시 언급되는 영화다.

아마도 <어웨이크>에서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 <베리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을 텐데 뭐 그런 기대는 빗나간 셈이고.

사실 밀실공포는 저예산 독립영화로서는 시도해볼 만한 장르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큐브>(1997)가 대표적인데, 영화 속 스토리는 무한대로 뻗어 있는 큐브를 넘나들면서 이어지지만 실제로 세트는 2개만 지어놓고 조명만 바꿔 이야기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이 코너에서 리뷰한 <비바리움>(2019)도 마찬가지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미덕은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주인공이 탄 자동차가 기차와 충돌이 예견되는 장면이 있다. 저예산 영화이므로 이런 장면은 등장할 수 없다는 걸 누구나 의식하게 된다면 그 연출은 실패다. <어웨이크>는 어떨까. 굳이 엔딩크레딧까지 가지 않더라도 설정만으로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극중 초반 30분가량 세 주인공이 각자 시체안치실 관에 누워 지금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이 뭘까 추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옆자리에 앉은 관객의 코 고는 소리가 듣는 사람이 무안하게도 극장 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마 과로에 피곤했던 모양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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