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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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어두운 일탈을 택했나

때때로 범죄극은 기꺼이 응원할 만한 범죄를 다룬다. 우선 대부분의 복수극이 그렇다. 법치국가라면 무조건 죄악시할 사적 단죄를 전제하고 있음에도 악랄한 상대에게 받은 수모와 고통을 갚는 서사에는 늘 인간적인 연민이 뒤따른다. 궁지에 몰린 누군가가 위법한 수단을 써 위기를 타개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후 독자는 그가 공권력의 눈을 피해 무사히 사회에 스며들길 바란다. 더욱이 아무에게도 구원받을 수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벌이는 고군분투와 임기응변은 강력한 서스펜스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때 그 주체가 약자면 약자일수록 범죄는 마지못해 사용한 최후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며 더욱 힘을 얻게 마련이다.

쯔진천의 <나쁜 아이들> 표지 / 리플레이

쯔진천의 <나쁜 아이들> 표지 / 리플레이

중국의 인기 추리소설가 쯔진천의 <나쁜 아이들>은 제목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활용한 범죄 드라마다. 데릴사위인 장둥성은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당하자 처가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우선 장인과 장모부터 살해하기로 한다. 1년 가까이 장인·장모의 환심을 산 장둥성은 마침내 교외에 있는 산에 함께 올라 둘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계획대로 아무도 없는 시간과 장소를 골라 사고사로 위장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며칠 후 아이 셋이 찾아와 그에게 카메라를 내민다. 세 아이가 무심코 촬영한 동영상에는 그가 노인 둘을 절벽으로 미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심지어 이들은 동영상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아주 질이 좋지 않은 녀석들이다.

물론 ‘나쁜 아이들’이라는 평가는 어디까지나 장둥성의 주관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이야기는 줄곧 중학 2년생 주차오양과 그의 친구 딩하오, 푸푸에게 닥친 핍박과 위기에 초점을 맞춘 채 전개된다. 주차오양은 이혼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채 홀어머니와 함께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고 있다. 딩하오와 푸푸는 보육원에서 탈출해 어릴 적 친구인 주차오양을 만나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어울리던 중이었다. 주차오양의 아버지는 큰 회사를 경영하는 거부임에도 새로 꾸린 가정에만 충실할 뿐 주차오양에겐 정기적인 양육비조차 지급하지 않는다. 결국 주차오양은 어린 이복동생의 괄시를 감내하다 충동적으로 그를 살해한다.

<나쁜 아이들>은 일종의 도서(倒敍) 추리 형식으로 늘 아이들의 시점에서 이들이 벌인 범죄를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를 옥죄어 오는 경찰 수사와 교활한 장둥성의 완전범죄를 직조한다. 이윽고 아내마저 살해한 장둥성은 아이들의 협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회하게 포섭과 위협을 반복하고, 주차오양은 여기 영민하게 맞서는 동시에 자신의 살인을 은폐해야 한다. 살인 사건이 중첩되며 살인자와 또 다른 살인자가 대치하는 형식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이들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건 이들을 극단으로 내모는 사회 때문이다. 딩하오가 보육원을 벗어난 계기부터가 원장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던 푸푸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연약한 아이들은 그저 영악한 척 어른의 약점을 이용해 위태로이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차례로 아홉 명이나 살해당하는 만큼 속도감이 굉장하다. 여러 인물을 통해 지엽적으로 쌓아가는 정보는 뜻밖의 순간 입체적인 재미로 이어진다. 소년을 이야기의 중심에 던져놓음으로써 촉법소년 제도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한 번에 아우르는 저변의 문제의식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위기일발 소년을 응원하게 만드는 탁월한 오락소설이면서 급기야 생각할 거리마저 뭉텅 남기는 작품이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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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