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무라 류헤이가 만든 여성판 <다이하드>?
제목 도어맨(The Doorman)
제작연도 2020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7분
장르 액션
감독 기타무라 류헤이
출연 루비 로즈, 장 르노, 루퍼트 에반스, 악셀 헤니
개봉 2022년 3월 16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블루라벨픽쳐스
‘어어. 저기서 악당들을 추격해 나서면 안 되는데, 저 주인공은 여성판 <다이하드>를 찍을 셈인가.’ 영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생각한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보고 돌아와 해외 평을 보니 ‘기타무라 류헤이판’ 또는 ‘저예산 버전의’ <다이하드>라는 하마평이 붙어 있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감독, 기타무라 류헤이는 꽤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던 장르 감독이었다. <버수스>(2000),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국내와 영어판 개봉명은 아즈미)>(2003)과 같은 영화를 찍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클라이브 바커 원작의 <미드나잇 미트트레인>(2008)을 찍었다. 물론 이 영화도 액션 장르영화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다이하드>처럼 뉴욕시 전역을 횡단하며 찍는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리모델링을 앞둔 레지던스 건물이 배경이다. 제한된 장소 캐스팅에 세트 배경 촬영이니 그리 돈이 많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알리 고르스키(루비 로즈 분)는 퇴역군인이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인근에서 미 대사관 가족을 경호하는 작전에 중사 신분으로 참여했다가 테러단을 만나 교전해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작전 실패. 자신이 경호했던 대사의 꼬마 딸도 테러단의 RPG 공격에 폭사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알리는 삼촌의 권유로 레지던스 건물의 도어맨으로 취직한다. 그런데 이 건물엔 자기 언니의 가족이 살고 있다. 전후 대사를 보면 형부는 한때 알리와 썸을 탔고, 그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알리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가 도어맨으로 취직하기 전에 언니는 사고로 익사했다. 형부네 가족은 남매 자녀를 두고 있다. 집 밖에 나간 고양이를 찾아주면서 알리는 남매와 가까이 지낸다.
퇴역 군인의 위기 맞은 가족 구하기
사건은 그 연휴에 건물에 숨겨놓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보물(르네상스 시대 유명화가들의 그림들이다)을 찾으러 악당들이 들이닥치면서 일어난다. 알리와 같이 도어맨으로 근무하는 보르즈가 키맨이었다. 그는 옛 독일공산당 출신 빅터 두보이스의 의뢰를 받아 이 건물에 숨은 그림을 찾기 위해 일당을 끌어들인다. 이들은 이제 막 채용된 ‘도어맨’이라는 복병을 만난다. 인터넷에서 지난해 개봉한 이 영화의 정보를 보니 처음 작품을 준비할 때 영화명은 도어퍼슨(person)이었다. 아무튼 이 영화의 존 매클레인(<다이하드>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맡았던 주인공)은 여자제대 군인이니까. 프로덕션 단계에서 트럼프와 관련된 영화계 인사가 개입해 이름을 변경했다. 주인공 루비 로즈는 반발했다고 하는데 뭐 진짜인지는 모르겠고.
전반적으로 영화는 클리셰 덩어리다. 영화에서 알리가 첫 번째 미션(루마니아 미국대사의 딸 구하기)은 실패했으니 자신의 가족인 사촌 딸 구하기엔 성공할 것이고, 그를 통해 한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 우리에겐 비리 경찰의 포위에 맞서 건물 탈출을 시도하는 청부살인업자 역으로 진한 인상을 남긴 장 르노(<레옹>(1994))가 여기서는 사교적이고 교양이 풍부한 옛 독일공산당 인사로 나오는데, 전반적으로 장 르노는 우정출연 내지는 특
별출연 정도의 인상만 남길 뿐이다. 생각해보면 연휴를 택해 보물을 찾으려는 이유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무리한 설정이다. 몇 번의 위기를 겪지만, 악당들은 젠틀하게도 알리를 살려줬다가 제거에 실패한다. 모스 부호를 아는 남매의 오빠는 알리에게 전등을 끄는 방식으로 단수(斷水)를 하면 악당들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클리셰로 가득 찬 장르영화
기타무라 류헤이는 왜 이 영화를 찍었을까. 뉴질랜드에 머물던 피터 잭슨이 처음 할리우드에 진출해 찍은 영화 <프라이트너>(1996)가 생각난다.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1987), <데드 얼라이브>(1992)와 같이 그의 색깔이 명확한 독립공포영화를 찍던 감독이 할리우드의 영화시스템에 적응 못 해 상투적인 영화를 찍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 후엔 <반지의 제왕> 시리즈나 리메이크판 <킹콩>(2015)과 같은 영화로 세계적인 거장이 됐다. 기타무라 류헤이도 할리우드로 건너간 지 꽤 됐지 않은가. 결국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색깔을 살려내고, 어떤 사람은 살려내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성공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들이 찾고자 했던 보물은 무엇일까. 영국 역사 전공 대학교수인 주인공의 형부는 첫눈에 벽 속에서 나온 그림 중 하나가 카라바조의 ‘성 프란체스코와 성 라우렌티우스의 경배’(사진)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실제 이 작품은 이탈리아 팔레르모 성로렌스 성당에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작품이다.
기록을 찾아보면 1969년 10월, 2명의 도둑이 이 성당에 침입해 성당 벽에 있던 이 작품을 액자에서 떼어내 달아났다. 2018년 이탈리아 의회의 반마피아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에서 나온 주장에 따르면 해당 작품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한 마피아 거물에게 넘어갔으며, 이 거물 마피아는 스위스의 고미술상을 초대해 이 그림을 보여줬다. 그 고미술상은 첫눈에 진품임을 알아봤지만, 문제는 그림을 팔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림을 입수한 마피아는 미국에서 마약 거래 사건에 연루돼 체포·복역 중 2000년대 중반 사망했고, 그가 그림을 보여준 스위스 고미술상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에 정보를 제공한 전직 마피아 정보원은 그림이 훼손됐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실제 그림이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영화에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마피아가 훔친 그림이 어떤 경로로 흘러 들어갔는지 알 수 없지만, 통일 전 동독에 있었던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1969년에 없어졌으니 해당 작품은 53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소재 불명 상태다. 애초에 그림이 걸려 있던 성당에는 해당 작품의 모작이 걸려 있다고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