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In Our Prime)
제작연도 2020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7분
장르 드라마
감독 박동훈
출연 최민식, 김동휘, 박병은, 박해준, 조윤서
개봉 2022년 3월 9일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제작 ㈜조이래빗
제공/배급 ㈜쇼박스
처음은 아니다. 배우 최민식이 북한 출신 인사 역을 맡은 게. 최민식이라는 영화배우를 세상에 알린 게 <쉬리>(1999)의 북한 특무상사 박무영 아니었던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영화 제목 속 이상한 나라는 어디를 말하는 걸까. ‘이상한 나라’라는 제목의 책들이 생각난다. 예컨대 최근 교육문제를 주제로 경향신문 연재를 묶어낸 책 <이상한 나라의 학교>를 보면 그 이상한 나라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임에 틀림없다. 북한의 천재수학자인 이학성은 탈북해 한국에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학교 경비원이다. 그 학교, 전국단위로 학생들을 뽑는다는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다. 예전에 TV채널을 돌리다가 영시(英詩)를 멋있게 읊는 한 사립명문대 경비원 이야기를 지나치며 본 적이 있다. 저런 청소년 엘리트학교는 경비원을 뽑아도 능력자만 뽑는 것일까.
아무튼 이 영화의 중심인물은 수학 내신 9등급 학생 한지우(김동휘 분)다.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자사고 내지 특목고가 명문대 진학의 발판이 되면서, 전국의 영재를 싹쓸이한다는 비판을 모면하고자 입시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 전형을 도입했다. 어린시절 일찍 아버지를 잃고 달동네의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한 지우는 그 사배자 전형으로 들어간 케이스다. 이미 고1 수업시간에 학원 사교육 덕분에 고3까지 진도를 다 마친 아이들 틈에서 지우는 힘겹게 생활한다. ‘아이들을 공정한 잣대로 대하고 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담임선생은 다른 선생들과 잡담하면서 지우와 같은 아이들은 “결국 전학 가지 않겠냐”는 의견에 저런 애들이 내신 하위등급을 깔아주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환영을 받는다는 멘트를 하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란 어디일까
기숙사 룸메이트의 빵셔틀(정확히 말하면 술셔틀)을 하다가 발각된 지우는 기숙사에서 한 달 동안 쫓겨나는 벌을 받는다. 갈 데가 없어진 지우는 자신의 시험지를 푼 경비원 ‘인민군’(아이들이 영화 <쉬리>를 봐서는 아닐 듯싶고, 이 경비원이 탈북자 출신인 것을 알고 있어서 붙인 별명이다)이 수학과 관련한 ‘능력자’인 걸 알고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
딸기우유 한팩을 대가로 진행되는 경비원 이씨의 특훈을 통해 지우의 수학 실력은 나날이 늘게 된다. 지우는 그에게 자기 또래 나이의 아들이 있었다는 걸 알고 탈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사연에 관심을 갖는다.
총평하자면 최민식의 원톱 연기가 두드러지는 영화다. 2010년 이후 최근작들을 떠올려 보면 누구도 그의 연기에 토를 달 수 없는 경지에 올라섰다. 당장 <명량>(2014)이나 <봉오동전투>(2019)와 같은 영화를 떠올려 보라. 이순신이나 홍범도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차기작을 만든다면 최민식 말고 다른 배우가 그 역을 맡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우연의 우연이 겹치는 이야기 전개
앞서의 의문(저런 엘리트학교는 경비원을 뽑아도 능력자만 뽑는가)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의 설정만 놓고 보면 그가 저 자사고의 경비 일을 맡은 건 우연이다. 학교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지우와 만나, 그를 가르치게 된 것도 우연이 작용한 것이고. 이학성은 어린시절 세계수학 올림피아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로 나가 한국에서 뽑힌 소년과 실력을 겨룬 적이 있다. 그 북한 소년이 나이 먹어 탈북해 경비원으로 취직한 학교가 하필이면 자기와 경쟁했던 한국 소년이 졸업한 고등학교였다. 마침 그 학교에서 열리는 수학대회에 이제는 중년의 교수가 된 졸업생이 와서 축사를 하는데 그 경비원이 알고 보니 북한 수준을 넘어선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자였다. 감동적인 연설 말미에 공정의 가면을 쓴 못된 교사의 실체까지 폭로한다…는 설정은 그럼직한 이야기일까. 우연의, 우연의 우연이 겹쳐 ‘세렌디피티(의도치 않게 얻은 좋은 경험이나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영화의 설정은 1970년대 한시간짜리 TV코미디 단막극의 작위적 전개(이를테면 ‘회사의 왕따 신입사원이 알고 보니 사장님 아들이네’ 하는 식)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영화는 이 이상한 나라의 능력주의 교육을 풍자·비판하는 듯싶더니 판타지의 힘을 빌려 능력주의를 완성하는 ‘순정한 이야기’로 결론을 맺는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영화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갈까.
영화는 북한의 천재적 수학자 이학성이 연필로 계산식 작성을 마무리한 뒤 Q.E.D, 그러니까 ‘증명 완료’라고 쓰면서 시작한다. 편법보다는 과정, 진심이 결국 승리한다는 지우의 주장도 증명한 셈이고. 이학성이 증명 완료했다고 주장하는 리만 가설이란 뭘까.
리만 가설을 이야기하려면 그의 스승 가우스의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 3, 5, 7, 11, 13, 17… 숫자들의 공통점은? 금방 눈치챘겠지만 소수다. 일단 각 소수의 배수는 소수가 아니니 목록은 뒤로 가면 갈수록 띄엄띄엄 벌어진다. 일일이 손으로 계산하는 것 이외에 소수엔 어떤 법칙성이 있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아직 그 법칙성은 발견한 적 없다. 가우스가 바로 이 소수의 법칙성을 발견해 내는 일에 도전했다. 그는 결국 사망할 때까지 법칙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소수의 분포를 대략 알아내는 함수를 찾아냈다(수식은 인터넷에 널려 있으니 가우스 소수정리 등으로 검색해보자).
1859년 리만(사진)은 ‘주어진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에 관하여’라는 짧은 논문을 낸다. 진짜 짧았다. 총 10페이지에 이르는 논문에 그는 이렇게 쓴다. “독자들은 보다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겠지만 지금은 논의를 진행하는데 필수적이지 않으므로 일단 넘어간다.”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제시한 소수 법칙을 이미 증명한 것처럼 넘어갔다.
‘리만 가설이 마침내 증명됐다’는 주장은 그후 수학계의 오랜 떡밥이다. 2018년 9월에는 마이클 아티야라는 저명 수학자가 리만 가설의 해(Proof)를 마침내 발견했다고 발표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를 예고하는 등 작은 소동이 있었다. 마침내 9월 24일, 생중계 스트리밍 접속이 폭주해 다운까지 되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아티야의 입에 관심이 쏠렸다. 막상 생중계 영상에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증명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발표가 끝난 후 질문을 받자 그는 “이미 낸 논문에서 가설을 증명했다”고 답했다. 아티야는 증명논문은 끝내 공개하지 않은 채 2019년 1월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