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흑백영상 속 차분하지만 뜨거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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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산어보(The Book of Fish)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26분

장르 드라마

감독 이준익

출연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민도희

개봉 2021년 3월 31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자산어보>는 조선시대 성리학자였던 정약전이 편찬한 해양생물학 서적이다. 1801년 일어난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와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전라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 지역 연안의 어류와 수중식물들을 관찰하고 분석해 저술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양생물 백과사전으로 널리 알려진 <자산어보>는 3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 226종의 해양생물이 수록돼 있는데 현재 원본은 사라지고 필사본만 남아 있다.

대중에게는 오랫동안 동아시아 또는 한국 최초의 어보라는 잘못된 정보와 함께 기억되기도 했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한자의 독음을 놓고 ‘자산어보’가 아니라 ‘현산어보’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명확히 결론 나지 않은 상태다.

애초 정약전과 <자산어보>는 인물의 삶이 드라마틱할 뿐 아니라 그가 저술한 서적 자체가 갖는 분야와 내용의 특이성 때문에 지금까지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라 할 만하다. 실제로 충무로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영화화가 기획됐다가 무산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자산어보>는 액면 그대로 신비로운 ‘물고기 책’의 흥미진진한 제작과정이나 숨겨진 비밀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가 아니다. 차라리 당시의 기득권에 의해 자행되던 불평등한 사회상을 고발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죄인 양반과 귀재 천민의 만남

일찌감치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문물에 호기심이 많았던 정약전(설경구 분)은 형제들과 함께 갖은 고초를 당한 끝에 막냇동생 정약용(류승룡 분)과 각자의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홀로 머나먼 흑산도에서 외로운 일상을 보내던 정약전은 그곳에서 처음 본 다양한 해산물에 호기심을 느끼고 이를 기록해 문헌으로 남겨 뭍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리라는 계획을 세운다. 고심하던 그는 가난한 천민이지만 동네에서 총명하기로 소문난 청년 창대(변요한 분)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죄인과 엮이기 싫다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당하고 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며 돈독한 사이로 발전해간다. 그렇게 시작된 어보의 내용이 쌓여갈수록 두 사람을 갈라놓을 이별의 순간도 다가온다.

현역 감독으로서 이준익이란 이름은 남다른 존재감을 동반한다. 1993년 아동영화 <키드 캅>으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제작자와 연출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몇 안 되는 중견감독이기 때문이다.

그의 신작영화 <자산어보>는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내놓은 하나의 계보로 정리될 수 있을 그만의 독창적 역사극 작업인 <사도>(2015), <동주>(2016), <박열>(2017)에 이어지는 일련의 연장선상에 뚜렷이 위치한 작품이다. 과거의 역사를 탐색하지만 사건 자체보다 인물에 집중하는 그의 역사극들은 화려함보다는 소박함과 차분한 시선이 부각된 작품들이다.

현실과 맞닿은 과거의 재현

이번 작품에서 역시 감독 이준익은 분명히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뒤숭숭하고 산만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은 정약전과 장창대라는 두 인물의 관계를 주축으로 명료하게 응축된다. 그래서 관객들은 2시간 남짓 두 인물에게 올곧이 할애된 영화를 보게 되지만 정작 보고 난 후에 남는 잔상은 그들을 향한 일방적 공감이나 연민보다는 그들이 처한 환경의 부조리라는 현실적 한계가 짓눌러오는 무게감과 씁쓸함의 여운이 크다.

<동주>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은 다시 한 번 흑백으로 제작됐다. 마치 한폭의 수묵화처럼 여백의 미를 살린 은빛의 화면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과 외침은 뜨겁고 맹렬하다. 여기에는 잠재된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주·조연배우들의 호연도 큰 힘을 보탠다.

촬영을 마친 것은 2019년 10월경이었다고 한다. 기본적인 후반 작업에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하지만, 코로나19로 개봉이 애초 계획보다 더 늦어졌다고. 이로 인해 사회부조리에 어느 정도 초점을 맞춘 영화의 주제가 최근 불거진 특정 공기업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적발로 촉발돼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이해충돌과 위반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시의적절하고 기막힌 우연이다.

<자산어보>와 <목민심서>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에서 <자산어보>만큼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책이 다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다. 정약전의 동생으로 비슷한 시기에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은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이자 한민족이 낳은 최고의 사상가 중 한명이다. 18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하면서 다수의 책을 집필했는데, <목민심서>는 국가의 전반적인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 형법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흠흠신서>와 함께 ‘일표이서(一表二書)’라 명명되는 3대 저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정약용은 어려서부터 부친의 임지를 따라다니면서 행정과 관련한 많은 것들을 보며 성장했고, 본인 스스로도 금정찰방, 곡산부사로서 직접 백성을 다스린 경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오랜 귀양살이를 통해 국가권력과 관리의 횡포에 착취당하는 백성들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체감한 것이 저술의 배경이라 했다.

제1편 부임(赴任)부터 마지막 제12편 해관(解官)까지 총 12편으로 구성된 <목민심서>는 표면적으로 지방관을 비롯한 관리의 올바른 마음가짐 및 몸가짐에 대해 조언한 행정지침서이지만 실상은 에둘러 관리들의 폭정과 탐욕을 신랄하게 고발한 비판서이기도 했다. 본문을 채우고 있는 구체적인 예시와 체계적인 서술은 오늘날 당시 조선의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사료로서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제목이 <자산어보>지만 계급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데 더 깊은 시선을 쏟고 있는 영화다 보니 <목민심서>야말로 이 작품의 구축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을지 모를 일이다. 더불어 정약용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한시 ‘애절양(哀絶陽)’ 역시 극의 절정을 유도하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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