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정부 공모사업, 왜 떨어졌는지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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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면 각종 정부 공모사업이 뜬다. 며칠 밤을 새우면서 지원서를 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유조차 모른 채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사업의 목적과 심사기준에 맞춰 작성하고, 수많은 사업운영 결과를 제출해도 미심쩍은 이유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책방이음은 올해 공모사업에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얼마 전 공모사업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야 단서를 찾게 됐다. 공모사업은 중앙정부, 지방정부에서 낸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의 올해 사업에 응모하지 않았더니, ‘2021년 지역 서점 문화활동 지원사업’ 심사위원으로 초빙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주 책방은 모두 합격시키라고?

담당자는 문체부와의 회의에서 책방이음이 지역 서점 지원의 미비점을 지적한 결과로 이번 사업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동안 공모사업을 수행해도 책방 살림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수차례 지적했다. 사업에 들이는 시간과 공에 비해 지원되는 인건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담당자가 알려온 이번 사업은 50만원밖에 안 되는 정말 적은 액수지만, 인건비 지원 항목을 처음으로 책정한 사업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겠다고 흔쾌히 답했다. 문제는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겠다는 답을 한 다음 날부터 발생했다. 첫 번째, 심사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지원서 일체를 미리 파일로 보내왔다. 원칙적으로 지원서는 대외 유출이 금지돼 있다. 심사의 비밀 유지가 어렵고, 심사의 투명성도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사위원이라 할지라도 폐쇄된 장소, 정해진 시간 내에만 지원서를 볼 수 있다. 심사와 관련한 모든 내용은 대외적으로 발설할 수 없다는 보안각서를 쓰고 심사에 임한다. 그런데 아무런 주의 없이 지원서를 심사위원들의 개인 e메일로 보냈다. 채점표까지. 심지어 지원서를 자료집으로 만들어 보내겠다는 ‘편의’까지 언급했다.

두 번째, 서울과 경기지역 책방들에 임의로 감점을 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점을 지적하니 공고에 ‘지역 균형 배분’이라는 항목이 있다고 했지만, 공고 내용을 아무리 살펴봐도 없었다. 거짓말이었다.

해당 지원사업은 50개 동네책방을 지원하는데 150개가 넘는 서점이 지원해 경쟁률이 3 대 1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곳에서 지원할 만큼 이 사업에 관심이 많다는 방증이다. 심사에 적용할 특별한 기준이 있다면 미리 공고에서 알리는 것이 타당하지, 어느 지역은 지원 사업이 많다거나 다른 지역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의로 심사의 기준을 제시하거나 직접 주문하는 것은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이다.

세 번째, 출판진흥원이 소재한 전주의 책방은 모두 합격시키라 요청하는 사무처장의 의향을 전달받았다. 국토의 균형 발전과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공기업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역으로 내려보냈다. 출판진흥원이 전주에 있다면 전주를 중심으로 출판문화산업의 발전을 촉진하라는 뜻이지 공모사업에 그 지역 지원자에게 가점을 주거나 합격을 주는 방식으로 공치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심사위원을 사퇴하다

전주의 한 책방으로 문의해본 결과, 출판진흥원이 지역과 협력으로 하는 사업은 아는 바 없으며 개인적인 관심 이상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국 규모의 공모사업에 전주의 책방은 지원서의 내용과 관계없이 합격시키도록 요청받았다.

네 번째, 심사위원장을 내정했다.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도 공정해야 하지만, 심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심사위원장을 뽑는 것도 심사위원들이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 외부에서 마음대로 뽑는 게 아니다. 심사위원장으로 누군가를 내정하고 심사결과를 정한 상황에서 진행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서울과 경기지역 책방엔 감점을 주고 전주지역 책방을 모두 합격시켜라는 부당한 요청을 하면서 나를 심사위원장으로 내정한다는 연락을 받고 심사위원 자체를 사퇴해버렸다. 담당자에게는 이런 심사에 참석해 요청을 수락하는 건 부정의하며 불합리한 것 같다고 사유를 설명했다.

출판진흥원의 정략적인 행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는 ‘도서정가제 개악’에 반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출판진흥원에서 한 사업을 두고 책방넷에서 수행해주길 수차례 권했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대립하는 상황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건 적절치 않았다. 거절했다.

거절 이후에도 수차례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다. 또 거절하자 담당 부서의 팀장이 사업 수행을 요청해왔다. 또 거절하자 사무처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역시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 챗방넷은 이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어떻게? 출판진흥원이 공식 루트가 아닌 이른바 ‘비선’을 통해 책방넷의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지난 2017년 출판계는 “공정하고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흥원 원장을 선정”해 ‘민선 진흥원장’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기존 이기성 출판진흥원 원장에게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책임을 물어 내쫓은 직후의 선언이다. 이전 정부의 ‘구린내’ 나는 행태에 반발해 지금의 김수영 원장이 선임됐다.

원장은 바뀌었지만 출판진흥원에서 이런 행태가 지속되는 것을 보니 아이러니하다. 동네책방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도 문제이지만, 불공정한 심사로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 치는 동네책방의 의지를 꺾는 것은 ‘출판을 진흥한다’는 기관의 소임에 반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너무도 중대하다. 이런 조건에서 동네책방의 앞날을 꿈꾸는 것은 몽상일 뿐이다.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전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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