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단비처럼 고대하던 코로나19 백신을 맞게 됐다. 하지만 65세 이상 어르신은 좀 기다려야 한다. 수입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이 고령자에 대한 임상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늙기도 설워라커늘’ 접종조차 늦어지니 새삼 노화가 원망스럽다. 낙원에서 추방된 이래 불로장수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최고(最古)의 서사시 ‘길가메시’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비법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실패한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불사를 꿈꾸며 재물을 뿌렸지만, 지천명의 고개도 넘지 못했다. 과학의 시대를 맞아 생명과 젊음을 연장하는 욕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바이오 벤처 열풍이 불고 항노화 산업이 대목이다. 수명이 연장되면서 건강수명, 즉 노화에 대한 거부와 도전은 마치 시대정신으로까지 올라서고 있다.
<노화의 종말>은 노화의 개념부터 시작해 원인과 극복 방안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노화는 ‘정보의 상실’이다. DNA라는 디지털 정보와 후성유전체라는 아날로그 정보로 구동되는 인체 시스템에 잡음과 혼란이 생겨나면서 운영 능력이 저하되는 것이 늙음의 정체이다. 따라서 고장 난 정보체계를 복구하면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신박한 결론이 도출된다. 생의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벤저민 버튼 같은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셈이다.
가히 종교적 복음처럼 들리지만 20대로 돌아가기 위한 처방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적게 먹어라, 간헐적 단식을 하라, 육식을 줄여라, 땀을 흘려라, 몸을 차갑게 하라 등. 하지만 현대판 불로초도 언급된다. 이스터섬에서 발견한 라파마이신은 동물실험 결과 수명 연장에 주목할 만한 효능을 나타냈다. 당뇨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메트포르민, 적포도주에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 알코올 발효 증진제로 발견된 NAD 등도 노인으로 가는 시간을 저지하고 젊음을 복구하는 물질들이다. 실제로 경도가 끊어졌던 여성이 생리를 재개하고 80세에 이른 저자의 부친은 ‘회춘’이라고 부를 만큼 왕성한 활동력을 회복했단다. 물론 저자는 ‘장수 물질’의 오용과 과용을 경계하고 있다. 오랫동안 고용량을 복용할 때 건강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단서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동안의 고령자가 늘어날수록 지구는 인류를 감당할 수 있을까. 환경 파괴는 인간이라는 종의 자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생물학적 세대교체 없이 문명의 발전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내셔널리즘에 경도된 고령자가 의사결정의 주체로 자리 잡는 장로정치는 세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 공산이 농후하다. 결과적으로 수명의 양극화는 공동체를 해체하고 파괴하는 생물학적 신분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자는 낙관적이다. 인류는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기술의 발달과 사회체제의 재편성으로 위기의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도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니 책에서 강조하는 영국 왕립학회의 좌우명을 유념하자. “누구의 말도 믿지 마라(Nullius in Verba).”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