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세상. 우리가 ‘유토피아’라 부르는 그것은 과연 가능할까. 애초에 유토피아라는 말이 ‘없다’와 ‘장소’를 합친 단어인 만큼 어디에도 없는 것은 아닐까.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기획한 지 5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완벽한 세상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평등한 세상을 설계했고, 자본주의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꿈을 자랑했다. 영화 <매트릭스>는 그저 파란 약을 먹으면 AI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했고, 고대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이데아’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동굴 속의 그림자고 어쩌고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일본의 만화작가 우메자와 슌 역시 완벽한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지금의 일본이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모아 만화 <유토피아>를 만들었는데, 그 상상력이 참 기발하다. 모두 아홉 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고, 이중 몇 편을 살펴보려 한다.
첫 에피소드부터 강렬하다. 제목은 ‘나오미 여왕님을 모시던 날들’. 주인공 준이치로는 자원봉사로 공인 여왕님 후보를 맞이한다. 이 여왕님의 역할은 피학성애(被虐性愛)를 가지고 있는 성적 곤란자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공인 여왕님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소와 시험을 거치고 협회의 적성검사를 통과한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연수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만화는 준이치로와 여왕님 연수 중인 나오미의 만남과 헤어짐을 짧게 담았다. 일본에는 어떤 극단적인 법률이 제정되거나 제도가 마련되는 것을 설정으로 하는 <이키가미>나 <하레혼> 같은 만화가 많은데, 일본인들의 법과 제도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좋은 세상이란 모두가 지켜야 할 완벽한 규칙이 존재하는 곳이 아닐까.
‘튜브’라는 에피소드에서는 12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쿠다가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는 변화된 세상을 맞이한다. 매주 건강검진이 이루어지며, 영양부족이나 부주의에 의한 병과 부상은 범죄로 취급되는 세상. 너무나 안전해서 아무도 아프지 않지만, 후쿠다에게는 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행복은 쾌락이 클수록, 고통이 적을수록 증가한다”고 했고, 후쿠다는 행복의 원소를 찾기 위해 (금지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일본에는 ‘메이와쿠(迷惑·민폐)’라는 것이 있다. 일본인은 어릴 때부터 이를 배우기 때문에 주위에 폐를 끼치거나 공동체의 의견에 반하는 것을 무척 불편하게 생각한다. 에피소드 ‘이어진 세계’는 매일 모든 감정을 대화로 공유해서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야마다는 버스에서 마주친 누군가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를 비밀로 간직하고 싶지만 털어놓으라는 압박을 받는다. 결국 고민을 공유해 다음 행동을 정했지만, 이게 과연 자신의 결정인지 알 수가 없다.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메이와쿠 문화에 대한 절묘한 지적이다.
완벽한 세상이 가능한지 알려면 우선 완벽한 세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한 어떤 ‘유토피아’에도 결점이 있다. 우리의 상상력이 부족해서인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하나의 단일한 세상에 모두의 행복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세계는 일상의 마비를 겪고 있다. 이것이 지나가면 그때 우리는 행복이라던가, 좋은 세상이라던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일본은 더욱 그러지 않을까.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