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비즈니스에서 어느 정도의 과장이 허용될까? 뮤지컬을 통해 이 재미난 논쟁을 보여주는 작품이 막을 올려 화제다. <바넘 위대한 쇼맨>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그곳은 19세기 중반의 미국, ‘서커스’와 ‘쇼’가 인생의 전부인 사나이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이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 떳떳한 사기꾼이라 부르는데,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적당한 속임수는 필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난쟁이인 톰 썸을 섭외해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제복을 입혀 장군이라 부르는가 하면, 스웨덴 출신의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를 나이팅게일이라 포장해 큰 돈벌이를 이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커리어의 절정에서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가족을 위해 남은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치인이 되며 꿈을 좇기도 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곳, 쇼 비즈니스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매혹적인 모순으로 가득했던 남자, 위대한 쇼맨 바넘은 그렇게 자신만의 쇼를 펼쳐 보이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P. T. 바넘은 실존인물이다. 그의 서커스나 쇼는 사실 논란의 대상이었다.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이든 여인 조이스 히스에 대한 사연이 그렇다. 바넘은 그녀를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워싱턴의 유모였다고 거짓을 꾸며댄다.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하려고 바넘은 조이스 히스의 이빨을 전부 뽑아버리고 틀니를 쓰게 만들었다는 후문이 있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비열한 인물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다. 덕분에 바넘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늘 엇갈린다. 과연 그는 위대한 쇼맨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사기꾼일까. 뮤지컬은 시종일관 이 질문을 객석의 관객들에게 묻는다.
영화 <위대한 쇼맨>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하지만 뮤지컬과 영화는 다른 작품이다. 게다가 뮤지컬은 영화보다 훨씬 예전에 만들어졌다. 공연은 이미 1980년에 제작돼 그해 토니상에서 3개 부문을 석권했다. 덕분에 극적 전개면에서 무대와 영상은 꽤나 결이 다르다. 사건의 전후 관계도 다르고, 인물 간의 관계도 이질적이다. 굳이 따지자면 영화보다 무대가 좀 더 철학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다. 무대라서 더 잘 어울리는 깊이와 재미도 있다
서커스를 무대와 결합시킨 비주얼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캐나다산 서커스들, 예를 들어 <태양의 서커스>에서 봤음직한 묘기들이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즐기는 애호가라면 ‘복제품’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일반 관객들에겐 나름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
곳곳에서 돌고, 날아오르고, 객석을 오간다. 진짜 서커스 공연이라도 보러 온 듯하다. 서숙진 디자이너가 꾸민 무대의 공간감각이 꽤 독특하다. 특히 바넘의 부인 채어리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는 장면은 턴테이블 무대를 절묘하게 활용해 감동을 배가시킨다. 영화를 즐겼던 관객이라면 흥미로울 바넘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끽해보기 바란다.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